조상진 정치부장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지 2주가 지났다.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고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권한대행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위기관리'에 들어간 것이다.
탄핵안 처리과정에서 거대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공조(共助)를 과시했다. 그리고 민의(民意)를 거스른 댓가를 요즘 톡톡히 치르고 있다. 당당하던 승자의 환희는 간 곳 없고 납작엎드려 후폭풍이 가시기만을 기다리는 형세다.
이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4·15총선이라는 국민적 판단에 맡겨졌다. 판결이 법률적 해석이라면 선거는 정치적 선택인 셈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이 대통령권한대행을 맡고있는 고건총리다. 노 대통령이 칩거하는 청와대가 절간 같은데 비해 총리공관이 북적인다는 보도가 그것을 증명한다. 고 대행은 야당의 띄우기에 사면법 거부 등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는 듯하다.
이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묘한 느낌이 든다. 출발점이 서로 다른 두개의 선이 꼭지점에서 서로 만나는 것만 같아서다. 이들은 출신배경이나 자라온 환경, 성격 등이 판이하다.
노 대통령은 가난한 가정에서 어렵게 자랐고 학력 또한 상고(商高)졸업으로 변변치 못하다. 그래서 그런지 소학교만 다닌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말한다. 고 대행은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줄곳 우리나라 최고 교육을 받았다. 노대통령이 산야에서 멋대로 자란 야생초라면, 고 대행은 제도권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자란 화초라 할까.
얼핏 경력만 훑어봐도 확연히 구분된다. 노대통령은 노동분야 인권변호사로 뼈가 굵었고 5년 남짓 굴곡많은 국회의원과 7개월간의 장관경력이 전부다. 반면 고대행은 37세의 최연소 도지사에다 장관 3번, 국회의원, 서울시장 2번, 대학총장, 국무총리 2번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성격 역시 크게 다르다. 노대통령이 싸움닭, 즉 파이터형 정치가라면 고 대행은 돌다리도 두들겨 가는 전형적인 행정가 스타일이다. 노대통령은 1990년 3당 합당거부에 이어 2000년 당선이 보장된 서울 종로를 버리고 부산에서 16대 총선에 도전했다. 그것도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 난공불락의 지역구도를 깨겠다고 덤빈 것이다. 2002년 대선 직전에는 정몽준씨와 결별을 선언했고 지난해 터진 측근비리는 재신임 카드로 돌파했다. 이번 탄핵정국은 사과거부로 맞섰다. 노대통령은 위기때마다 상황을 벼랑끝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몸을 던져 승부수를 띄운다. 이에 비해 고 대행은 박정희 대통령이래 내리 7대 정권을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안정과 화합, 청렴성이 돋보이지만 군부독재시절 양지만을 쫒았다는 비난도 뒤따른다.
하지만 닮은 점도 없지 않다. 머리가 비상하다는 점과 리더십이 그렇다. 노 대통령은 6세에 천자문을 떼었고 고 대행 또한 수재였다. 또 서민적 풍모와 섬세한 감성을 지닌 점도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두번의 대면기회에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은 93년 11월 무주에서 열린 전북일보 노조수련회에 강사로 초빙된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잠바차림에 노조원들과 술을 마시고 카세트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맞춰 밤늦게까지 막춤을 추었다. 부인에게 준다며 선물을 챙기는 자상함도 보였다.
고 대행은 서울시장을 그만둔 2002년 9월 서울에서 취재차 만났다. 점심자리에서 꽁보리밥에 소주 2병을 비우는 모습이 그렇게 소탈해 보였다. 깨뜨리긴 했으나 직접 국산포도주 1병을 들고 나오는 섬세함에 놀랐다.
'불확실성'의 탄핵정국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고 대행은 5월말께 사임하고 하버드행을 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초유의 탄핵사태가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패이게 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미국의 블룸버그 칼럼은 한국을 웃기는 나라(joke republic)라 하지 않았던가. 이번 사태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대조적인 두 지도자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민주주의를 한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이길 바란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