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주인공인 도시, 사람의 도시’
얼마 전 건축잡지의 글을 보다가 내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이 있다.
오밀조밀하게 몰려있던 아담한 주택 대신 가득 채워져 있는 고층아파트들, 꼬불꼬불하고 좁은 골목길 대신 뚫린 널찍한 도로들, 그리고 그 위에 붐비고 있는 자동차들. 이것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에 어떤 이들은“많이 발전했네”라고 말한다. 전보다 현대화되고 편리해진 것을 발전의 척도로 본다면 우리 도시는 분명 많은 발전을 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한편에서는“사람냄새가 사라졌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냄새가 사라졌다.... 아파트 덕택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고, 자동차 덕분에 멀리에서까지 물건을 사러 도시로 몰려들고 있으니 사람냄새가 사라졌다는 건 모순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리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도시의 모습은 더욱더 화려해져 가고 있지만, 도시공간을 건축물과 자동차, 각종 시설물들에게 내어주면서 사람은 점점 소외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도로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는 자동차 통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보도를 걷어내고 차도를 넓히는 작업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고, 보도가 있다하여도 그 위는 불법주차 차량과 각종 시설물들이 차지하고 있어 보행자는 권리를 누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집 앞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목숨을 위협하는 생활도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생활도로에서 발생하는 보행자 교통사고율이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어느 곳에서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가 없을 만큼 우리의 보행환경에는 적신호가 들어와 있다.
네덜란드, 독일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보행자의 관점에서 가로를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으로 개선하고 있고, 생활도로에서의 자동차의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교통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몇 해 전부터는 차 없는 거리 조성, 녹화거리 조성사업, 역사탐방로 조성을 비롯하여 보행우선지구와 같은 제도 운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보행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다.
아직은 이러한 노력들이 큰 효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가장 인간적인 이동수단인 보행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사람의 도시에 한 발짝 다가서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사람의 도시란 많은 사람들이 즐겨 걷는 도시, 기계나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배려되는 도시, 부품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살아가는 도시, 보고?듣고?만지고?냄새 맡고?느낄 수 있는 도시이다. 이것이 진정한 도시의 모습이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도시라고 생각한다.
편리함에 길들여져 버린 우리에게 아직은 불편하고 힘든 일이겠지만,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거리 만들기를 시작으로 사람의 도시를 만드는 작업에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나 역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혹시 사람보다는 기능을, 사람보다는 건축물을, 사람보다는 차량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아야겠다.
/윤정란(전주시정발전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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