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워싱턴포스트지는 “미국이 6자회담 분위기를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한국 등에 ‘북이 리비아에 핵물질을 수출했다’는 허위 정보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올 2월초 마이클 그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중국과 한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이 파키스탄에 핵물질을 수출하고 파키스탄이 리비아로 다시 넘겼다’는 원래 정보에서 파키스탄 부분을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는 것이다.
미국이 주변국에 이런 왜곡된 정보를 전달한 직후 북은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2ㆍ10 성명을 통해 6자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결국 미국의 의도적인 거짓 정보의 제공으로 북은 6자회담에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미국의 목적은 기대치를 훨씬 넘어 달성된 셈이다.
미국은 특정 목적을 위해 얼마든지 정보를 조작해낼 수 있는 국가라는 의심은 지구촌의 양심적인 지식인과 시민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다. 조작된 정보로 여론을 왜곡한 뒤에 전격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의 언론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파괴자로 거의 예외없이 북을 지목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파괴자는 미국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 정치에 이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북이라는 소위 ‘악의 축’이 ‘평화의 축’으로 전환하게 되면 미국의 강경보수파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반면에 ‘악의 축’이 존재하면 강경보수파들은 입지를 강화한 상태에서 계속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의 강경보수파들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민족이다. 북핵문제는 미국 국내 선거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여 언제나 강경보수파들의 득표에 애용되고 있는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강경보수파가 국민을 선동할 수 있는 슬로건 중에서 북핵문제는 최고의 공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니 빨리 해결할 이유가 없다.
둘째,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의 전선을 현 상태로 유지하거나 확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가장 큰 공로자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어쨌거나 중국이 북을 설득하고 있는 모양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역할 확대가 자못 찜찜하게 되었다. 게다가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동북아시아의 평화가 정착되는 초석이 놓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의 미군의 역할이 축소될 수밖에 없어진다. 미일안보동맹에 기초한 신속배치군 창설 등의 패권주의적 노선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에 밀리지 않으려는 미국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상황을 미국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셋째, 내면의 필요성 때문이다. 지금 미국과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동맹이 아니라 적대국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여 적대국을 해소하면 내면적으로도 상실감과 허탈감에 시달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표적 없는 사격만큼 어리석은 행위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내면에서 주요 공격 목표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보다는 갈등을, 우리 민족과 한반도의 평화보다는 긴장을 더욱더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제국주의적 이익은 주로 갈등과 긴장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이상의 의심과 이유가 예상을 빗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북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에만 매달리지 말고 남측과 직접 대화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려주기를 촉구하면서 꽃샘추위가 끝나기를 기다려본다.
/정도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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