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타향에서] 벼는 때가 되면 고개를 숙인다

우리 사회에 혁신적인 변화, 주40시간 근무제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연휴를 맞게 되면서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3무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농담이 오고 간다. 돈이 없고,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다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건전한 방향으로 자리잡아 가리라 생각된다.

 

그 동안 7월하면 무더위와 함께 장마, 습기로 근무조건이 원활하지 못한 계절이었다. 이런 7월을 맞아 연휴를 지내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얼마 전 농촌전경을 바라보면서 깨달은 일을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고향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는 사시사철을 달력이 아니라 주변을 바라보면서 받아들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에 올라와 오랜 세월을 바쁘게 살다가 지방국립병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유를 가지고 고향에서 그런 시절이 보냈었다는 것을 떠 올리게 되었다. 그후 은퇴하면 시골에 작은 과수원을 만들어 다니러 오는 손주들에게 과일이나 따 먹이자던 생각을 하던 중 어떤 인연으로 근교에 작은 토지를 마련하여 야채도 가꾸고 과일나무도 심게 되었다. 농사일이라고는 전혀 모르지만, 아무튼 손바닥만한 땅을 갖고 보니 오가는 일이 잦고, 오가며 지나는 논길을 눈여겨 보다보니 예정에 없던 농사공부도 하고, 경험도 많이 하게 되었다.

 

어느 해인가 무척 비가 많이 내린 해였다. 쉬지 않고 내리는 비로 햇살을 보기 어렵더니 낟알이 채워지지도 못한 채 벼는 고개를 숙여 버렸다. 오다가다 만난 농민들은 쭉정이가 반이라고 한 숨을 내쉬는데도 쭉정이만 달린 벼는 누렇게 익어 처연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 때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옛말을 생각하면서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천만에 말씀, 때가 되면 벼는 저절로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걸!’하고 깜짝 놀랐었다. 모든 것이 때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기를 쓴다고 시간을 일초라도 더 늘이거나 줄일 수 있겠는가!

 

일정한 때가 되면 벼는 모두 익어 고개를 숙인다. 충실하거나 말거나! 그러나, 그 때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 모두 충실한 알곡은 아닌 것이다. 농부의 눈에는 때가 되어 들판에 누렇게 익어 고개숙인 벼라고 하여 모두 알곡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이 충실하지 못하면 아무리 때가 되었다고 한들 충실한 알곡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사는 길이 다르겠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오리라고 생각한다. 그 때에 우리의 의지만으로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버티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무리 우겨도 절대로 더 이상 숙성을 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 하여도 똑 같은 무게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올 여름 새롭게 맞는 주40시간 근무제로 주어진 시간에 모두 땀 흘리면서 스스로의 무게를 더하여 우리 모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는 그 때에 충실한 알곡으로 판정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본다.

 

/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문화일반전북과 각별…황석영 소설가 ‘금관문화훈장’ 영예

사건·사고김제서 작업 중이던 트랙터에 불⋯인명 피해 없어

정치일반"새만금개발청 오지마"…군산대 교직원 58% 이전 반대

정치일반울산 발전소 붕괴 매몰자 1명 사망…다른 1명 사망 추정

사건·사고고창서 70대 이장 가격한 50대 주민 긴급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