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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보름달이 주는 교훈 - 신홍수

신홍수(재경 남원향우회장)

이제 며칠 있으면 대보름날이다. 항시 그렇지만 정월 대보름하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이다. 캄캄한 밤의 어둠을 물리치고 환하고, 무섭게 타오르던 대보름의 불잔치. 대보름의 불은 겨우내 얼어 있던 손발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마을 사람들의 볼을 붉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의 남자 어른들은 빈 묵정밭에 짚단을 높이 쌓아올리고 짚단에 불을 질렀다. 불은 짚단보다도 더 높이 밤하늘로 타올랐다. 불이 높이 타오를수록 지난 해 일어난 슬프고 힘들었던 일들이 태워져버리고, 다가올 앞날의 힘겨움도 미리 불살라진다. 불이 사위어지면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또 아이들은 깡통 속에 불을 넣고 논두렁을 신나게 달려 다녔다. 작은 깡통 속의 불꽃은 활활 타오르면서도, 빠르게 돌리는 아이들의 손동작에 보름달처럼 둥근 원을 그려 보여 주었다. 아이들도 대보름날만은 두려움 없이 신나게 불을 가지고 노는 것이 허용되었다. 여자들은 불놀이에 쓰였던 작은 불 토막들을 모아, 정월 초하루에 새로 달았던 동정을 불태웠다. 묵은해의 고통은 물론, 새해에도 액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리 액막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보름의 불놀이는, 모두가 해를 무사히 보내고자 하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이제 그와 같은 불놀이는 법으로 금지되었기에 보름날의 불놀이는 추억으로 존재한다. 그래도 대보름 먹걸이 풍습만은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나물에 오곡밥을 먹으며,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도 빌고, 호두며 땅콩, 잣 등을 소리 내어 쪼개 먹었다. 특히, 부럼 할 때의 ‘딱’ 소리는 액을 쫓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달이란 본시 사라지고 다시 돋아나는, 생멸의 생명 원리를 그대로 간직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허공에 뜬 달이, 한 달을 단위로 차오르고 다시 푹 꺼지는 동안, 차오름의 만족과 비움의 겸허를 동시에 알게 된다. 대보름날의 놀이는 이러한 달의 의미를 알고 다가올 미지의 슬픔까지도 이기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생명 있는 것이 언젠가 차오른 후에는 텅 비어갈 것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며 액을 견디고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보름 같은 마음이란 차오르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할 것이다. 소유의 마음이 아니라, 버림의 마음 말이다.

 

이제 다시금 그 때의 달놀이, 불놀이가 그립다. 많은 정치인들이 권력욕에 물들어 정치를 하지 않고, 많은 경제인들이 사리사욕을 탈피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의 욕망만을 성취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들은 가진 것이 없어 가지고 싶어 하고, 가진 후에는 그것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해 한다. 가지기 위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달의 한 면만을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름달만 보고 달의 삭망을 보지 못함. 보름달이 온 우주에 자신을 덜어줌으로써 다시 보름달이 되듯이, 우리 또한 덜어내고 또 그것을 나눔으로써 주변을 환하게 비출 수 있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만일 보름달 같은 그 마음이 없다면, 보름달에 담아보는 기원들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각박할 것인가.

 

/신홍수(재경 남원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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