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철호기자
중국 전국시대 조(趙)나라를 지탱한 두 기둥을 손꼽으라면 대표적인 인물로 인상여와 염파를 들수 있다.
인상여는 탁월한 외교적 솜씨를 발휘해 약소국 조나라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재상에 오른 사람이고 염파는 숱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대장군이 된 무인으로 후세까지 크게 명성을 떨치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조나라 왕이 인상여를 재상으로 임명하자 염파가 불만을 터뜨렸다.
“세 치 혀를 놀려 재상이 된 인상여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내 머리 위에 올라 앉다니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구나. 내 그를 만나면 단단히 혼을 내주리라 ”
염파가 공공연히 그런 말을 하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는 일을 피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인상여가 염파를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수근거렸고 염파는 갈수록 점점 기세가 등등해졌다.
결국 이같은 소문을 들은 인상여의 측근들은 재상이 너무 겁을 내는것 아니냐며 사람들 사이에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전하자 인상여가 이렇게 대답했다.
“강대국 진나라의 왕 앞에서도 당당했던 내가 염파를 두려워하겠는가.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못하는 것은 나와 염파장군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 두 사람이 반목해 서로 대결한다는 소문이 진나라 왕의 귀에 들어간다면 진나라는 그 즉시 대군을 몰아 우리 조나라를 침범할 것이다.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것은 두 사람의 사사로운 체면 싸움이 막중한 국사를 망칠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뒤늦게 크게 뉘우친 염파는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하며 벌을 받겠다고 꿇어 엎드렸다.
그러나 인상여는 염파의 허물을 묻어주고 위로하면서 생사를 함께하는 친구가 되자고 약속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전해지는 부형청죄(負荊請罪)의 고사다.
문경지교(刎頸之交)란 말도 이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지난 18일 벌건 대낮에 익산의 모대학에서 사범대학 교수간에 서로 주먹질을 하는 폭행사건이 일어났다.
교수 채용 문제를 둘러싼 말다툼이 불씨가 되어 결국 평소 골 깊은 감정 대립이 폭발, OK 목장의 혈투를 벌이다 코뼈와 손가락이 골절되는 불상사가 있었다.
이날의 혈투는 싸움을 보다못한 제자들의 제지로 일단락됐는데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교수들이 교내에서 그것도 제자들이 엄연히 지켜보는 가운데 사생결단이라도 하려는 듯 살벌한 싸움을 벌였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다.
더구나 이날 싸움의 장본인 K모교수는 취재 나온 기자들에게 폭언을 하고 언론 보도 통제를 거리낌 없이 요구하며 호통(?)치는 당당한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무척 궁금했다.
발단과 동기야 어떻든 상식적으로 이해할수 없는 결과적 행동을 보였을때 송구스러움과 미안함을 갖는게 인지상정인데 오히려 자신의 처신에 대해 당당함으로 일관하는 행동은 그저 혀를 차게하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의 도덕적 명예 실추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한번 크게 질타한다.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지고 학생과 동료 교수들에게 사죄해도 부족한 사람이 싸움 사실을 보도한 기자를 호통하고 매를 들겠다고 하니 이쯤 되면 정말 ‘막 가자는 거’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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