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숙(前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농민 아닌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묻는 것 중 하나가 왜 꼭 우리쌀을 먹어야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때문에 늘 그 질문의 답안지를 머리 속에 넣고 다녀야하고 더구나 농사지은 쌀을 직거래로 팔아야하는 입장이고 보니 쉽고도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답안지의 내용이란 대략 이렇다. 첫째, 쌀의 자급은 나라의 자존심과 식량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둘째, 신선도와 안전도 면에서 수입쌀에 비할 바가 아니며 국민건강을 위해서는 당연히 우리쌀이다. 셋째, 자연녹지, 공기정화, 담수능력으로 인한 지하수자원보존과 홍수피해방지 등 환경을 지키는 1등공신이 쌀농사다. 넷째, 전쟁, 자연재해로 인한 세계적 식량부족, 식량무기화, 그에 따른 국가안보, 통일대비를 위해 쌀농업은 꼭 지켜져야 한다. 다섯째, 비싸다고 우리쌀을 외면하면 쌀생산기반 붕괴는 물론 농토를 떠난 농민들로 실업인구가 증가할 것이며, 한번 무너진 생산기반을 복원하는 일은 유지비용의 서너배의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때문에 국가는 쌀농업을 비교역대상 기본산업으로서 반드시 보호해야하고 소비자들 역시 우리쌀 애용으로 쌀농업을 함께 지켜가야 한다.
그러나 나의 대답이 과연 소비자들에게 우리쌀 구매의 절대적인 결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젠 내가 도리어 묻고 싶다. “왜 꼭 우리쌀을 사야한다고 생각하시지요?” 농민임을 잊은 중년의 주부가 내 안에서 이렇게 말을 꺼낸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지게꾼 등 뒤에서 끙끙대며 들어다가 마루 한가운데 놓인 뒤주에 부어넣으실 때면 가마니 틈에 끼어있던 쌀들이 사방으로 튀며 달아났는데, 집안 모든 여자들이 마루바닥 헤매며 치마폭에 한톨한톨 귀하게 주워 담았다. 가을들판을 메뚜기박자로 한참 폴짝대고 나면 묵직해지는 주전자, 풀줄기에 꿰어 구워먹던 그 기막힌 맛의 간식거리가 사라졌을 때쯤, 소달구지에 높다랗게 실려가던 나락다발, 한 오라기씩 빼내어 이삭을 잘근잘근 씹어대면 고소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넘는데 입가엔 뽀얀 자욱이 금세 말라붙었다. 소잔등을 후려치던 회초리가 달구지 뒤에 달라붙은 아이들을 파리떼처럼 쫒아낼 때 후닥닥 사방으로 흩어지던 아이들,.......쌀과 들은 우리의 역사요 문화였다. 기차소리 요란한 방아실 출구로 술술 쏟아져 내리던 신기한 탄생, 별처럼 맑게 빛나는 그것을 내나라 땅에서 얻어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가? 미국, 중국산 쌀을 생각하면 도무지 어떤 그림도 떠올릴 수 없다. 향기로운 들과 별 같은 쌀이 다 무언가? 방부제가 묻어있겠지? 유전자변형 쌀은 아닐까? 설마 쌀 모양 납 쪼가리 섞인 건 아니겠지? 식량주권이든 국가안보든 거창한 이유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별 같은 내 아이들에게 속도 모를 수입쌀을 먹일 수야 없지 않겠나? 그런데 문제는 학교급식이나 군대급식, 음식점의 밥이 수입쌀일 것만 같아 걱정이고 또 우리쌀 포장지를 둘러쓰고 둔갑한 수입쌀은 어찌 가려낼지 그게 걱정이야.” 한다.
한미FTA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인 광우병 위험 미국소고기 수입 임박 소식과 함께 10년 안에 모든 농산물을 개방하라는 한미FTA, 그 거대한 폭탄이 별 같은 쌀을 쏟아낼 우리의 보물 들판에 떨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농민이 아니라 온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대재앙임에 틀림없다.
/박찬숙(前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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