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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대학 입시는 시작되었는데 - 이세재

이세재(우석고 교사)

“장차 부모님이 늙으시면 무얼 해드리겠는가?” 지난 10월, 모 대학교 수시모집 면접시험 문제였다. 거기에 응시한 학생이 있어 어떻게 대답했느냐고 물었더니 “집을 사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잔뜩 긴장해서 이것저것 예상 질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준비해 갔던 학생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면접에 맥이 빠져 돌아왔다.

 

그렇다. 늙으신 부모님께 집을 장만해 드리겠다는데 더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교수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이면 인간에게 근원적으로 소중한 것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어 있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인간이 나이가 들면 소외감이나 외로움 등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라는 걸 여러 교과를 통해 배웠지만 그것은 한낱 시험문제에 불과했고 정작 그 학생의 의식을 지배했던 건 자나 깨나 여기저기서 보고 들은 물질적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 학생이 면접시험을 보러 가기 며칠 전에 우리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 humanism)'에 대한 수업을 했었다. 나노기술, 생명공학, 컴퓨터 등 최첨단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미래의 인간은 복제된 자신의 새로운 신체에 뇌의 기억까지 옮김으로써 영생을 구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인간은 이제 ‘호모 사피언스 사피언스’에서 한 단계 더 진화한 ‘포스트휴먼(post human)’으로 가는 것이다. 이 내용은 수능 언어영역 문제집에 있는 지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생명과 죽음, 영생에 대한 허구, 진정한 행복 등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고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수학능력고사를 위한 수업은 학생들에게 예상 문제의 유형이나 기억되었을 뿐 다른 내용은 모두 지워져 버렸나 보다.

 

사회 분위기가 학교 교육을 뒤흔드는 시대가 빨리 가기를 기대하며 교단에 서 왔다. 교육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이야말로 교육의 자존심이다. 그런데 늙으신 부모님께 소중한 것이 아파트라고 선뜻 대답할 수밖에 없는 고 3 제자를 보면서 교육적 자존심은 또 한번 무너졌다.

 

대학은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균형적인 사고력을 유도하기 위해 어려움을 무릅쓰고 통합교과 논술 시험 등을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온갖 잔꾀로 그 논술에 대항하려고 한다. 가정은 물론 학교까지. 그러나 현재와 같은 교육환경과 체제에서는 대학교수들이 기대하는 논술 답안지가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원자로가 빈약하면 그것은 곧 재앙이다. 미래의 문명은 원자로 속의 핵물질보다 천만 배 더 위험한데 그 문명을 이끌어갈 우리 후손들의 그릇이 균형을 잃을 때 인류의 재앙은 시작될지 모른다. 학교가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세재(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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