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12:23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새벽메아리
일반기사

[새벽메아리] FTA...AI...'설상가상' 농민 - 박찬숙

박찬숙(전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TV화면 아래로 대설주의보 띠자막이 지나가자 정말 커다란 눈송이가 밤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농민만 아니었다면 그 소담스런 광경에 순수와 평화 등 아름다운 단어들을 떠올리며 그 어느 때보다 푸근한 잠자리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밤 평화는커녕 시시각각 쌓인 눈의 높이와 무게를 가늠하느라 밤잠을 설쳐야 했다.

 

다음날 긴 막대에 갈퀴를 묶어 하우스 위에 쌓인 눈을 끌어내리는데 하우스 사이 좁은 통로는 끌어내린 눈으로 사태를 이루었다. 허리께까지 차오른 눈더미 속을 빠져나오는데 바지자락, 내복 함께 무릎위로 말려 올라가버렸고 눈이 가득찬 장화 속에서 빠져나온 빨간 속살은 흰눈 속에 퍽이나 생경하게 보였다. 그렇게 눈 골짜기를 정신없이 허우적대는 동안 엄습해온 것은 추위나 힘겨움이 아니었다. 익산, 김제지역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확산방지를 위해 살처분되고 있을 작은 짐승들의 신음과 허우적거림이 눈 속에 박힌 나의 무기력한 다리에 잔뜩 엉겨붙어오는 것만 같았다.

 

국제보건전문가들이 AI 확산방지를 위해 조류 외의 가축까지 도살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내었음에도 정부는 개, 고양이 등 돌아다니는 가금류가 AI확산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조류와 함께 살처분 방침을 결정하였다. 그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하니 그에 전문성이 없는 나는 그 어떤 다른 주장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살처분 대상의 기준이란 것이 매우 불합리해 보인다. 고양이, 개는 몰라도 돌아다니는 돼지가 있을 리 없음에도 살처분 대상에는 돼지도 들어있다. 돼지는 위험해도 소는 괜찮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그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상식선에서 본다면 가금류보다는 양계장 주변에 가장 흔하게 돌아다니는 쥐, 족제비 등 야생포유류와 까치 등 텃새들이 바이러스 매개동물로는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을 일제 소탕한다는 방침은 없는 듯하다.

 

풀어 키우던 가축은 가두고 격리하여 철저히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꼭 모조리 죽여야 하나? 해당지역 조류사육 농민들의 피해와 고통만으로도 충분히 안타깝고 가슴 아픈데 가금류와 반려동물까지 생매장해야하는 주민들의 상처는 또 어찌하랴! 김제에 사는 어떤 이는 며칠 전 반려견을 데리고 먼 친척집으로 피난을 떠났다고 한다.

 

진정 살처분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가? 예방주사는 AI의 종류가 수십가지여서 현재로서는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철새가 지나갈 때마다 살처분의 공포로 아수라장이 되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해야하나? AI가 공중에 떠돌아도 이겨낼 수 있는 건강한 닭, 오리로 키우는 방법은 정말 없는가? 사람 또한 AI든 싸스든 각종 독감바이러스를 극복해낼 수 있는 건강한 몸을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은 없는가? 예전에 농가에서 키우던 닭과 오리들은 철새들이 지나갈 때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있었을까?

 

한미FTA로 인한 불안에다 AI공포까지, 겹치기 고통 위에 내려진 대설주의보, 밀운불우 나라에 사는 설상가상의 농민은 흙더미 속에서 허우적대는 살처분 대상이나 진배없이 그 삶의 무게가 너무도 무겁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오늘, 익산, 김제지역의 농민들에게 AI로 인한 상처와 고통 그 한가지만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평화의 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박찬숙(전 전북여성농민연합 회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