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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큰절' 정치

해병대 신병들에게는 20년 넘게 내려오는 전통이 있다. 포항에 있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입소에 앞서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는 것이다. 훈련교관이 확성기를 통해 “입대 장병들은 줄 안으로 들어와 정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가족과 이별해야 한다. 이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라’는 교관의 구령이 떨어진다. 그러면 장병들은 ‘몸 건강히 훈련 잘 받겠습니다’는 함성과 함께 수백명이 일제히 엎드려 부모님께 큰 절을 올리는 것이다. 부모들은 이 때 찡하는 감동에 눈물을 훔치게 된다. 신세대 장병들 역시 부모의 끝없는 사랑을 깨닫는 순간이다.

 

절은 남에게 몸을 굽혀 공경을 표하는 행위다. 그 중 큰 절은 최상급의 경의와 복종의 의미로 읽힌다. 그래서 격식도 꽤 까다롭다. 예전에는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쓰거나 사모관대를 차려 입는 등 의관을 정제해야 했다. 큰 절을 올리는 경우도 문외배(門外拜)와 신위(神位)에 제사 지낼 때, 스승에게 절할 때 등 엄격했다. 문밖에 자리를 펴고 큰 절을 한 후 방안에 들어가 꿇어 앉아 인사말을 하는 문외배는 부모및 백숙부모, 조부모및 조부의 형제, 외조부모 등에 국한했다.

 

엊그제 한나라당 원희륭 의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큰 절로 세배를 올린 것을 두고 말이 분분하다. 대통령 경선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이후여서 더욱 그렇다. 유망한 차세대 주자가 독재자에 머리를 숙인데 실망했다는 비판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새해에 세배하는 것은 미풍양속’이라는 옹호론도 없지 않다. 원 의원처럼 전·현직 대통령에게 큰 절을 하고 입줄에 오른 경우가 정가에는 심심치 않은 일이다.

 

386 민주화 세력의 선두그룹이었던 허인회씨는 2000년 청와대 행사에 참석해 김대중 대통령에게 넙죽 큰 절을 올렸다. 이것이 두고 두고 그를 괴롭혔다. 또 2005년 2월 청와대 신년인사회에 참석했던 팔순의 대한노인회 부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리는 바람에 대통령이 당황해 황급히 그를 일으키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우리 속담에 ‘절하고 뺨 맞는 일 없다’는 말이 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어떠한 때고 인사는 부족한 것보다 지나친 편이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의 계절에 대선주자들이 올리는 큰 절은 아무래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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