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대] 개그맨 전유성이 남긴 것
(1) 조세호: 제가 슬럼프에 빠져서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전유성: 그래, 그만둬! 조세호: 근데 그만두려니 걱정됩니다. 전유성: 그럼 해라. 어차피 두 가지 아니냐, 하든가 말든가. 그냥 해라. (2) 김신영: 저는 한물간 개그맨 같아요. 전유성: 축하한다. 김신영: 한물간 게 왜 축하할 일이죠? 전유성: 한물 가고, 두물 가고, 세물 가면 보물이 되거든. 넌 보물이 될 거야. 위 대사는 개그맨 전유성이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격려하며 한 말이다. ‘개그계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지난달 25일 전북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6세로 사인은 폐기중 악화. 폐기중은 폐에 기포가 터지면서 흉막에 공기가 스며 들어가 그 압력으로 폐의 일부분이 수축돠는 잘환아다. 고인은 1969년 곽규석이 진행하는 TBC ‘쇼쇼쇼’의 코미디 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으며 ‘유머 1번지’와 ‘개그 콘서트’ 등을 통해 코미디계를 이끌었다. 그가 우리나라 연예계에 남긴 발자취는 막대하다. 첫째, 창조성과 탁월한 기획력. 그는 당시 낮게 평가되던 코미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개그맨’이란 용어를 대중화시켰다. 또 후배 개그맨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코너의 틀을 잡아주는 개그계의 아이디어 뱅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은 보편화된 심야극장이나 심야볼링장도 그의 기획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원천은 끊임없는 독서와 사물을 비틀어 보는 데서 나왔다. 그는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 등 책도 36권을 냈다. 둘째, 인재를 보는 안목. 그는 가수 이문세, 김현식을 비롯해 개그맨 주병진, 이영자, 팽현숙, 조세호, 김신영, 배우 한채영 등을 발탁했다. 또 개그 콘서트의 신봉선, 안상태, 김대범, 황현희, 김민경 등을 발굴했다. 셋째, 이타성(利他性). 그는 밤무대를 뛰며 어렵게 생활하던 이영자를 TV에 출연시켜 일약 스타로 키웠다. 그러자 이영자가 찾아와 ‘고맙다’며 3000만원을 건네자 돌려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끝으로 전북과의 인연. 그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경북 청도군에서 ‘코미디 철가방’극장과 카페를 운영하며 코미디 페스티벌 행사 등 지역문화 활성화에 힘썼으나 군청과 갈등을 겪었다. 이후 2022년 딸이 사는 남원시 인월면으로 옮겨와 ‘국수 교과서’라는 국수 가게를 1년여 운영했다. 유일한 혈육인 딸 전제비는 이곳에서 카페를 운영 중이다. 그리고 예원예술대에 코미디 연기학과를 만들어 조세호, 김신영 등 많은 제자를 키웠다. 그는 가정적으로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숨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개그를 놓지 않았다. “묘비명으로 어떤 문구를 남기고 싶냐?”고 묻자 “웃지마, 너도 곧 와!”라고 답했다고 한다. 죽음조차 개그로 승화시킨 것이다.(조상진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