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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 지하 차도 배경

한옥마을 관광객 연 1500만명 시대를 눈앞에 두고 KTX 전주역의 역할 또한 관심이 많아졌다. 지난달 공사가 시작된 역사(驛舍) 신증축 사업은 2025년까지 450억 원을 들여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아울러 교통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 고속 시외버스가 이곳을 경유하는 복합환승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처럼 외양과 규모가 크게 달라지는 만큼 서비스 질 개선 효과는 분명 눈에 띄지만, 핵심 대책인 교통 흐름 측면을 간과한 대목이 아쉬웠다. 역전 삼거리 형태의 도로 상황에서 불 보듯 뻔한 교통 체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 다시 말해 꽉 막힌 전주역에 지하 차도를 만들어 흐름을 원활히 하자는 의견이다. 우범기 시장도 이 점에 공감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전주역 위상은 물론 동북부 지역 발전에도 변수로 꼽히고 있다. 전주 시내 주요 간선 도로는 대부분 시외로 빠져나가는 외곽 도로와 연결돼 있다. 이 중 전주역 때문에 흐름이 끊겨 교통 체증을 부채질한 곳이 유일하게 백제대로다. 전주의 대동맥 역할과 함께 가장 많은 통행량을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역세권 개발 논의와 함께 역사 증축이 맞물리면서 교통량 증가에 따른 지하 차도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 곳을 뚫어 백제대로와 지금 공사 중인 완주 용진-우아동을 잇는 전주외곽순환도로까지 연결해 교통량을 분산하자는 계획이다. 여기에다 이 도로가 역세권 개발 중심 지역을 관통하면서 8000여 세대 입주가 예상되는 이곳 교통난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그런데 돌발 변수가 생겨 전체 밑그림에 차질을 우려하고 있다. 우범기 시장이 취임과 함께 밀어붙인 역세권 개발 논의 과정에서 사업 주체인 LH가 지하 차도 개설에 난색을 표명한 것이다. 공사비용 1000억 원이 부담된다는 입장이다. 역세권 개발사업은 LH가 지난 2018년부터 전주역 뒤편 장재마을에 2만여 명 규모의 택지 개발을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던 중 돌연 김승수 시정의 전주시가 지구지정 해제 이어 사업 중단을 요구하면서 벽에 부딪혔다. 그러면서 지난 2021년 전국을 강타한 ‘LH 사태’의 모럴 해저드까지 덮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그 사이 LH도 5년 넘게 사업이 지연되면서 추진 동력을 잃은 데다 추가 재원 마련, 주민 보상 문제 등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런 가운데 전주 역사 증축 공사를 계기로 역세권 개발사업이 다시 화제가 됐다. 우 시장이 그간 침체됐던 동북부 지역 발전에 강한 의욕을 갖고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지하 차도 개설 논의가 이뤄진 셈이다. 그래서 그는 LH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해 당초 면적보다 넓은 지역의 개발 조건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한 걸로 알려졌다. 한때 개발 이익에만 급급해 "땅 장사 하냐" 며 공분을 샀던 공기업 LH가 서민 주거복지 실현이라는 명분 앞에서 선택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6.01 18:22

공직자의 명분과 실리

백범 김구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중 거의 첫손에 꼽히는 사람이다.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는 상해에서 임시 정부를 이끌면서 사선을 넘나들때 어린 두 아들에게 삶의 궤적을 알려주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한다. 나라가 독립되면 마당을 쓸고, 문지기가 되겠다는 대목에서는 가슴뭉클하다. 말은 쉽지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호 백범(白凡)은 당시 가장 천대받던 '백정'과 '범부'(보통 사람)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한다. 세계대전이 끝난뒤 독립을 이끌던 사람이 새정부 최고지도자가 돼 적성국가에 빌붙던 이들을 처단하고 민족정기와 역사바로세우기에 앞장섰다. 유고슬라비아 티토, 베트남 호찌민, 프랑스 드골, 튀르키예 케말파샤 등이 바로 이러한 예다. 하지만 훨씬 많은 국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새 정부에서 찬밥신세였다. 신생 민주정부 대한민국 백범 김구가 대표적인 경우다. 전세계를 휩쓴 냉전의 와중에 강대국의 구미에 맞지않는 민족주의자의 앞길은 정부 지도자가 되기는 커녕, 천수를 누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이후 제3세계에서도 수없이 되풀이 되는 비극이었다. 독립만 된다면 마당을 쓸고 문지기가 되겠다는 이가 전세계를 통틀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한 국가의 지도자쯤 되면 타고난 사람이기에 그렇다고 쳐도 사실 보통사람으로선 감내하기 어렵다. 특히 고관현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해 소위 하향지원을 하는게 쉽지 않다. 요즘엔 기수가 많이 파괴됐다고 하나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검찰이나 경찰의 경우 퇴직 후에도 하방경직성은 강해 보인다. 그런데 요즘 전북지역 관가 안팎에서는 남의 시선이나 기수, 서열 등을 의식하지 않는 현상이 매우 광범위하게 일고 있다. 얼마전 전북연구원장에 선임된 이남호 전 전북대총장의 경우 장관급 국립대총장을 역임한 이가 전북도의 연구기관 책임자로 임명된데 대해 의아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앞서 국토부차관과 도 정무부지사를 지냈던 최정호씨가 전북개발공사 사장에 지원해 최종 확정되자 주목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런가하면 최근엔 행안부 차관을 지냈던 심보균씨가 익산시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돼 눈길을 끌었다. 차관급 인사가 전북도 개발공사 사장을 맡는 것도 이례적인데 인구 30만 안팎의 시 단위 도시관리공단 이사장을 맡았기에 더 그런것 같다. 작년엔 김관영 지사 취임 직후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광수 씨가 정무특보로 선임되고, 농림부차관 출신의 김종훈씨가 경제부지사를 맡기도 했다. 이젠 상향지원, 하향지원이라는 표현이 촌스럽고 의미없는 듯 하다. 명분이나 주위 시선 보다는 어느 자리에 있든 실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가 여부다. 할일 없는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어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역할을 하는게 가장 보람있고 보기좋은 모습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5.31 15:26

작은 도시 기쿠치의 선택

미국의 이름난 잡지 <INTERIOR DESIGN>에 ‘잠시 머물고 싶은 세계 12개의 도서관’으로 선정된 아주 작은 도서관이 있다. 일본 규슈의 작은 도시 기쿠치시(菊池市)의 시립중앙도서관이다. 기쿠치시는 구마모토현의 북부를 흐르는 기쿠치 강 상류에 있는 인구 5만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예부터 규슈지방의 정치, 교육, 문화 중심지로 번성했던 까닭에 지금도 적지 않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곡창지대로 농업이 발달하고 지리적 여건으로 쌀 집산지가 되어 상업도시로도 발전했다. 그러나 일본의 오래된 지방 도시들이 그렇듯이 기쿠치시도 쇠퇴의 대열에 들어섰다. 원인은 역시 청년층의 이탈이었다. 대도시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활력을 잃고 성장은 멈추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이주(?) 행렬이 도시의 존립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시가 나섰다. ‘청년들이 떠나지 않는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청년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던 시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의 선택은 도서관. 프로젝트 목표는 지역 주민이 자랑스러워하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시의 의뢰를 받은 건축가 나카무라 가즈노부 씨는 기쿠치 시의 자연환경을 주목했다. 기쿠치강의 흐름처럼 곡선을 그리는 거대한 책장.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름다운 도서관 기쿠치시립중앙도서관 ‘BOOK RIVER’는 그렇게 탄생 됐다. 기쿠치도서관은 거대한 규모나 화려한 외형을 가진 이름난 건축물과는 다르다. 소박한 건물의 외관만 보자면 특별하지 않으니 디자인 명성을 듣고 찾아온 외지 관광객들이 실망하거나 당황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1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강처럼 곡선으로 흐르는 책장이 가로질러 놓인 공간의 아름다움에 금세 압도당한다. 크지 않지만, 100m가 넘는 책장이 강물처럼 휘감기며 공간을 나누거나 통하게 하며 다양한 기능의 공간을 만들어낸 도서관 내부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이다. 이 작은 도시의 선택은 옳았을까. 2017년 개관한 이후 두 달 만에 지역 주민의 80%가 도서관을 찾았고 타지에서 도서관을 찾는 방문객들도 큰 폭으로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도시는 활력을 찾고 시민들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는 기쿠치 도서관의 슬로건은 ‘사람과 정보, 문화가 만나 어울리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교류의 공간’이다. 쇠락한 도시를 살려내는(?) 도서관이 늘고 있다. 새로 짓거나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거나, 지역의 가치를 살려낸 도서관들은 주민을 모으고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어 관광객을 부른다. 인구 감소로 쇠락의 위기에 놓인 도시라면 주목할만한 좋은 선례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05.30 18:37

다시 사라지는 학교 담장

‘없앨 것인가, 존치할 것인가.’ 학교 담장을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접점을 찾지 못했다. 학교 담장이 주변 미관을 훼손하고, 폐쇄적인 교육 공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지자체 지원으로 학교 담장 없애기 사업이 속속 추진됐다. 콘크리트 담장이 녹지공간‧주민 소통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학습권 보호와 학생 안전을 위해 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의 정책은 오락가락했다. 애써 허물어 낸 학교 담장을 다시 쌓는 일도 생겼다. 학교 운동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일관성을 잃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와 각 지자체가 학교 담장 없애기 사업을 역점 추진했다. 마침 그린캠퍼스 조성사업에 나섰던 대학도 참여했다. 전북에서는 전주교대를 시작으로 군산대와 전북대가 속속 담장을 없애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초‧중‧고교에서는 우려했던 문제가 생겼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는 담장이 없는 전국 초‧중‧고교에 대해 최고 1.8m 높이의 투명펜스를 설치하도록 했다. 대낮에 학교 운동장에서 발생한 아동 납치 성범죄 사건(2010년)이 일으킨 파장이다. 이후에도 어느 한쪽의 가치를 앞세울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학교 울타리를 넘어 온마을이 배움터가 되는 시대, 마을과 학교가 하나 되는 새로운 교육생태계에 관심이 쏠렸지만 학교 담장 허물기를 선뜻 의제로 올리지는 못했다. 학생 안전 문제가 부담이었다. 그런데 최근 지역사회와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낸 새로운 형태의 학교가 속속 등장해 오랜 담장 논란을 무의미하게 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생활SOC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을 통해서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력해 학교 유휴공간에 수영장과 주차장‧도서관 등 교육·돌봄, 문화, 체육‧복지시설을 설치하고 이를 학생과 주민이 공동 활용하자는 것이다. 공간혁신을 통해 주민복지 시설이 학교 안에 들어서면서 외부인의 학교 출입을 제한하는 담장은 의미가 없어졌다. 교육부는 지난 3월 ‘학교복합시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후 전국 각 지자체와 교육청이 업무협약을 맺고 학교복합시설 조성 계획을 속속 내놓고 있다. 특히 경기도교육청이 신설 학교를 중심으로 학교복합시설을 잇따라 조성해 관심을 끌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시대, 학교를 신설할 때 유·초·중학교와 주민시설이 복합화된 미래형 통합학교로 설계해 학교 신설을 억제하는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전북교육청도 최근 학교복합시설 공모사업 설명회를 열고 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이미 구축해 놓은 지자체와의 교육협력 체계가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 안전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최우선으로 지켜내야 할 가치다. 그렇다고 울타리로 방어막을 치고 배움터를 지역사회와 철저하게 단절시켜 놓을 수만은 없는 게 시대의 흐름이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5.29 08:15

외국인 노동자의 존재감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産災) 관련 뉴스가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들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으며 우리 이웃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런 가운데 안타까운 점은 산업 현장 안전사고 중 이들 희생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 한국의 산재 사고 사망률은 OECD국가 평균의 2~3배 수준으로 세계 1위다. 불법 체류로 인해 막다른 상황에 내몰린 외국인 노동자는 정상적 경제활동은커녕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버티고 있다. 반면 고령화 농촌에선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자치단체들은 동남아 등지에서 단기간 계절노동자를 데려와 겨우 농번기 일손 부족을 메우는 실정이다. 농촌과 도시의 노동 현장은 이들의 손길 없이는 정상 가동이 불가능할 만큼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 수는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과 저임금 단순 노무직에서 차지하는 이들 비중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 지역 상황은 훨씬 더한다. 올해 1분기 농업 부문 외국인 근로자만 8천666명이 입국했다. 문제는 악덕 기업 현장에서 이들의 체불 임금액이 작년 2만9376건, 1천183억원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힘들고 위험하다며 꺼리고 외면한 곳에서 열심히 일한 댓가치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저출산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는 인력 수급 상황에 비추어 이들 노무 관리가 핵심 과제로 꼽혀 왔다. 역설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위상은 저출산 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있다. 취학 아동인구 절대 부족으로 올해 신입생을 단 한 명도 받지 못한 초등교가 전국 145곳이다. 그중 신입생이 10명 미만에 그친 학교도 전국 6천163개 중 1천587개로 25%가량 차지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올해 초등교 입학생들이 2016년생인데 그해 출생아가 40만6천여 명이다. 그 후 6년이 지난 2022년 출생아가 24만9천여 명인데 이들이 입학하는 2029년에는 전국 초등교 절반이 신입생 10명 미만이라는 사실이다. 대학교까지 연쇄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지방 소멸의 끔찍한 현실은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아무리 최첨단 자동화 추세라 할지라도 경제활동 인구가 뒷걸음질 치는 건 우리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3D 업종과 농촌의 인력난 속에서 그 공백을 메워주는 외국인 노동자야말로 반가운 이웃이다. 고통 분담을 함께 나누는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짓밟힌 인권과 노동력 착취, 임금 체불 등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것도 아울러 병행돼야 한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피부 색깔과 생김새가 같지 않아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는 못할 망정 차별과 냉대를 받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영곤
  • 2023.05.25 16:55

순환골재와 잼버리

며칠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녹색정비’ 신도시 정비 원칙을 담은 ‘녹색순환정비법안’을 발의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대선 이후 잘 보이지 않던 심 의원은 민감한 정치 현안도 아닌 기후위기를 언급했는데 내용을 보면 작은 것 같아도 매우 중요한 게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건설폐기물 발생 최소화를 위해 재활용 건축자재인 순환골재 사용을 공공건설에만 적용되던 현행 법체계에서 더 확대했다. 건축물 기초 재료로 쓰이는 모래와 자갈을 뜻하는 골재(骨材)는 품질이 보장되지 않으면 건축물의 안전 역시 담보할 수 없다. 매년 산과 강에서 채취하는 골재는 2억㎥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확보하는 과정에서 산림·하천 훼손과 환경 파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천연골재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환경 훼손이 불가피한 만큼 대체 자원으로 떠오른 것이 순환골재다. 순환골재는 폐(廢)토석 등 폐기물을 처리한 후 품질 기준에 적합하게 만든 것을 의미한다. 기존 자원을 재활용하면서 제품 가격은 천연골재의 60% 수준이다 보니 많이 사용할수록 공사 예산을 절감할 수 있기에 도로 공사, 주차장 겉흙, 매립시설의 복토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폐기물로 만들어 믿을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 아직 널리 이용되지 않고 있다. ‘건설폐기물의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나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경우 순환골재 및 순환골재 재활용 제품을 전체 공사 자재의 40% 이상 사용을 의무화 하고 있다. 한국산업규격(KS)의 순환골재 품질기준 비교표에 따르면, 콘크리트용 굵은 골재 기준으로 순환골재의 절대 건조밀도는 2.5g/㎤ 이상으로 천연골재와 같고 흡수율(3.0% 이하)과 안정성(12% 이하) 분야도 순환골재와 천연골재의 기준이 같다. 요즘 새만금잼버리 대회의 성공 개최 여부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침수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야영장 일대에 순환골재를 조속히 깔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오른 물을 빼내는 펌핑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기에 대회가 끝난뒤에도 지반을 다져야 하는 만큼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서 순환골재로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전문가의 막연한 판단에 맡기지 말고 반드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야만 새만금잼버리가 끝난 뒤 두고두고 후회 할 일이 없다. 그런데 때마침 자원순환 분야 전문가들이 오늘(25일)과 내일 무주 나봄리조트에서 ‘2023년 전북 자원순환 워크숍’을 개최한다. 이번 워크숍에는 전북도 및 각 시군 공무원, 한국폐기물협회, 한국환경공단 등 다양한 기관에서 참여한다. 워크숍에서 한국건설자원협회의 ‘건설폐기물 재활용 정책·제도 현황 및 순환골재 활용 사례 등의 정보가 공유될 예정이라고 하니 잼버리 관계자들은 직접 가서 한번 들어보고 순환골재 활용 여부를 판단할 일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5.24 15:44

​재래시장의 선택과 지혜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여 일정한 기간의 간격을 두고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이 있었다. 상설 시장과는 달리 일정한 날에 장이 서는 그날을 우리는 ‘장날’이라 불렀다. 5일장이라면 매월 1일과 6일, 2일과 7일, 3일과 8일, 이렇게 짝을 맞추어 열리는 형식이다. 지역의 특성에 따라 3일 간격으로 혹은 5일 간격으로 열렸던 이들 정기적인 시장은 일종의 사설시장이었지만 상업이 발달했던 조선 후기, 장시문화를 주도했을 정도로 크게 번성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근현대화로 시장의 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재래시장(상설시장)은 쇠락하거나 소멸의 위기에 처했다. 상설시장보다도 생명력을 보장받기 어려웠던 정기시장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돌아보면 3일장과 5일장은 상업 활동의 중심이자 지역주민들이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지역문화 공동체의 결속을 이어내는 의미 있는 장소였다. 이들 시장이 번성했던 시절은 1970년대. 전국적으로 1천개의 시장이 존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급격한 현대화와 함께 몰려온 유통 환경의 변화는 재래시장의 쇠락을 부추겼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서면서 살아남은 사설 시장은 반절 수준. 숫자는 500개로 줄었고 이후 더 급감하기 시작해 지금 살아남은 3일장 5일장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즈음, 위기에 처한 재래시장을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 현대화’를 내세운 사업이 각 자치단체마다 유행처럼 번졌다. 한결같이 엄청난 예산을 들여 시장을 현대식으로 개조하는 방식이었다. 낡고 오래되어 불편했던 재래시장은 번듯한 현대식 상가로 변신했으나 아쉽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우리지역에도 순창장이나 무주 설천장, 진안 장계장처럼 이름을 알렸던 5일장이 많았다. 그러나 1923년에 시작되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도 건재했던 순창장이나, 현대화 사업으로 화려한 변신을 내세워 옛 영화를 꿈꾸었던 설천장도 쇠락의 위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당시 재래시장의 현대화는 현실적 과제였지만 외형에만 치우친 개량 사업이 가져온 폐해는 오히려 악영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최근 지역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들의 전통시장이 더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북에서도 10년 사이 6개 시장이 사라졌다.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다시 낡아지고 불편해진 재래시장이 불러온 한계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이름을 알리는 재래시장과 거기 기대어 맥을 잇고 있는 5일장들이 있다. 들여다보면 시설의 현대화에만 기대지 않고 재래시장이 지켜왔던 독창적인 정서를 살리기 위해 분투해온 곳들이다. 시장의 기능에 문화적 요소를 더해 관광지로 변화시킨 선택과 지혜에 박수를 보낸다. /김은정 선임기자

  • 오피니언
  • 김은정
  • 2023.05.23 18:37

‘소싸움 대회’ 논란

‘싸움’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싸움구경과 불구경이라는 말도 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 또는 동물 간에 싸움을 붙이고, 이를 구경하면서 즐겼다. 인간들끼리의 실제 싸움을 대신하는 이벤트로 권투와 레슬링·킥복싱 등의 스포츠가 발전했고, 동물을 훈련시켜 싸움을 붙여놓고 이를 즐기는 투견(鬪犬·개싸움), 투계(鬪鷄·닭싸움) 등이 지구촌 곳곳에서 성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북 청도군과 경남 의령군, 전북 정읍시·완주군 등 전국 11개 지자체가 매년 소싸움 대회를 열어왔다. 소로 논밭을 갈던 농경사회에서 마을축제의 하나로 열렸던 전통 민속경기를 계승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2008년 동물보호법이 개정·시행되면서 투견·투계와 같은 동물싸움은 불법이 됐다. 법률에서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소싸움은 예외다. 현행 동물보호법(제10조)이 동물학대 행위를 나열하면서 ‘민속경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는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뒀기 때문이다.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도 별도로 있다. 지난해부터는 각 지자체가 ‘소싸움 대회’라는 명칭을 ‘소 힘겨루기대회’로 일제히 바꿨다. 수년 전부터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법을 개정해 소싸움을 폐지해야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자연상태에서 싸우지 않는 초식동물인 소를 억지로 싸우게 하는 것 자체가 동물학대라는 것이다. 올들어 각 지자체가 코로나19로 3~4년 간 중단했던 소싸움대회를 속속 재개하기로 하면서 ‘전통문화냐, 동물학대냐’를 놓고 불거진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최근 이 같은 논란의 중심에 정읍시가 섰다. 대회 예산을 세워놓은 정읍시가 ‘제23회 정읍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대회’를 6월 8일~12일에 열기로 하면서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전국 각 지자체가 추진한 올 소싸움대회는 동물학대 논란이 아닌 구제역에 발목이 잡혔다. 최근 방역당국이 구제역 긴급 방역조치에 나서면서다. 정읍시도 대회를 무기한 연기했다. 당장 극한의 갈등과 대립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불씨는 남았다. 이와 달리 완주군은 일찌감치 올해 대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해마다 대회를 열어온 완주군은 올초 소싸움경기를 완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 동물학대 논란까지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예산을 투입해 논란거리를 만들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다. 동물학대 논란과 상관 없이 싸움은 구경의 대상이 아니라 말려야 하는 것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는 속담도 있다. 아울러 ‘지역 한우의 우수성을 알려 축산업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한다’는 대회의 본래 목적을 제대로 살리고 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제 정읍시에서도 소싸움대회 지속 또는 폐지 여부를 고민해서 확실하게 결론을 내야 할 때다. / 김종표 논설위원

  • 오피니언
  • 김종표
  • 2023.05.22 11:14

갈아 엎어야할 전북정치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경쟁이 뜨겁게 달궈진다. 국민의힘은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여소야대 구도가 만들어져 집권당으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대선 때 0.73% 차이로 패배한 이후 이재명 사법리스크와 전당대회 돈 봉투사건 김남국 의원 코인사태로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내홍이 심각, 전통적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에서도 여론악화로 지지율이 떨어진다. 총선을 앞두고 국힘이나 민주당은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어느 쪽이 수도권을 장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것이다. 국힘은 여소야대 구도를 깨려고 이재명 사법리스크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고 민주당은 정권교체를 위해 의석 수를 현재처럼 늘리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여야가 공히 민생문제는 외면한채 당리당략에 따라 정쟁만 벌여 민심은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한다. 사실 국힘도 여소야대 구도를 내년 총선 때 깨지 못하면 거의 윤석열 정권도 식물정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전 정권의 실정을 들춰내는 등 지지세 상승을 위해 총력전을 편다. 민주당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처럼 연거푸 대형악재가 터져 당 지지도가 국힘한테 밀린다. 전북을 포함 호남에서 조차 이재명 사법리스크로 실망한 사람들이 늘어나 당 지지도가 60%대에서 50%대로 10% 이상 떨어졌다. 지난 전주을 재선거때 진보당 강성희 후보가 26.8%라는 최저투표율속에서 당선된 걸 보면 정치혐오가 상당 수준에 다달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이 후보를 안 냈지만 지역연고가 없는 강성희 후보가 당선된 것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임정엽 무소속 후보 보다는 강 후보를 역선택, 정치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큰 틀에서 국힘과 민주당의 건곤일척 싸움이 전개 되지만 전북에서는 여전히 민주당 강세가 점쳐진다. 민주당이 미웁지만 그래도 국힘을 지지할 수 없는 입장 아니겠느냐는 것. 그래서 역대 의원중 가장 약체인 21대 현역의원의 물갈이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중앙정치무대에서 전북 의원들의 존재감이 없다면서 이들 한테 전북 몫을 가져오라고 기대하는 게 마치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차리리 그럴 바에는 17대부터 계속 이어져온 물갈이폭을 넓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필마로 지사직을 단박에 꿰찬 김관영 지사가 전북 의원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홀로 아리랑을 부르며 고군분투한다. 이차전지 특성화단지를 새만금으로 유치하려고 PT까지 직접 한 김 지사가 성공하려면 정치력 있는 의원의 도움이 절실하다. 정치권의 힘이 강하고 세져야 김 지사가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같이 무기력 한 의원들을 또다시 여의도로 보내면 전북은 가망이 없다. 그래서 내년 총선 때 무능한 전북정치판을 갈아 엎어야 한다. 도민들이 오죽했으면 OB들까지 소환했겠는가. 전북정치의 존재감이 너무 약해졌기 때문에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전 국회의원들을 불러내고 있다. 쥐 못 잡는 고양이는 과감하게 도태시켜 정치생태계를 확 바꿔야 한다. 전북도 다른 지역처럼 경쟁의 정치가 싹터야 희망이 생긴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3.05.21 17:48

전주을 지역위 “보이지 않는 손”

26.8%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과 진보당의 강성희 후보 당선은 전주을 선거구의 정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4월 재선거를 통해 드러난 이 같은 결과는 그만큼 유권자의 정치 혐오가 심각하다는 걸 역설적으로 방증한다. 이상직 의원 불명예 퇴진으로 민주당 공천 책임론이 불거진 가운데 선거가 치러졌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과거 이 지역은 실질적인 재선 의원이 배출되지 않을 정도로 지역 민심과 조직력이 흩어져 있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사실 민주당 지역위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도 그리 녹록지가 않다. 국회의원 공백 사태로 직면한 지역위 위원장 대행 체제도 벌써 1년이다. 비상 상황에서 출범했지만 비교적 안정적 운영 평가를 받는 가운데 최근 이 체제를 흔들어 입지를 다지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얼마 전 마감한 민주당 조직강화특위의 사고 지역위원장 공모를 앞두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력 입지자 가운데 한두 명이 중앙당 비선을 통해 본인의 혜게모니 장악을 위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것. 전략 공천설까지 떠도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런 기류가 포착된 것은 당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찬물을 끼얹는다. 이 과정서 당원들 입장이 철저히 배제됐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국힘 정운천, 진보당 강성희 의원과 함께 재선거 32.13% 득표율의 임정엽 전 군수 등의 출마가 점쳐지는 내년 총선 대진표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중앙당이 지역구 민심을 살펴 그에 걸맞는 맞춤형 공약과 함께 위원장 선출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런 가운데 전주을 위원장 대행 체제는 당분간 유지하는 데 무게가 실려있다. 총선을 앞두고 지역위원장 사퇴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위원장 선출에 따른 공천 특혜시비 논란이 우려된다는 판단에서다. 짐작컨대 새판짜기를 노리며 현 체제 물갈이를 통해 그토록 위원장에 목매는 이유가 총선 대비 권리당원 모집과 당원 명부 확보에 절대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예비 후보 다수가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중앙당이 섣불리 나서면 총선 개입설만 부채질한 형국이다. 지난해 6월 중앙당의 전주을 지역위원장 공모에 10여 명이 몰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 지역 이병철 도의원을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한 바 있다. 전주을 지역위는 2020년 총선 때 경선 파동과 불복 사태로 심각한 내홍을 겪은 뒤 현역 의원 중도 하차까지 이어지며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 여파로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민주당은 책임을 통감하고 재선거 불출마를 결단했다. 더군다나 절대 강세 지역임에도 2차례나 다른 정당 후보에 국회의원 자리를 내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도 사고 지역위란 꼬리표 때문에 운신의 폭은 좁은 데 총선 예비 후보는 난립 상태다. 이런 상황서 난마처럼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지역 민심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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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5.18 17:40

전북연구원장의 역할과 기대

전북연구원의 뿌리는 멀리 1991년 제4대 도의회 개원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병석 당시 도의원이 “전북의 발전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낙후전북의 오명을 탈피하려면 싱크탱크 역할을 할 ‘전북발전연구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시작됐다. 한쪽에선 “퇴직을 앞둔 도청 국장급 간부를 위한 위인설관의 성격이 짙다”며 반대하기도 했으나 우여곡절끝에 1992년 전북경제사회연구원으로 출범, 오늘에 이른다. 오랫동안 ‘전북연구원’은 마치 일해재단처럼 정치적 해석을 낳는 경우가 많았다. 지사의 측근이 원장을 맡는 경우 잡음은 더 심했다. 창의성과 독립성을 토대로 전북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 보다는 도내 자치단체에서 용역을 받은 것으로 겨우 살림을 꾸려가는가 하면, 전북도의 주문에 맞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데 급급해 관변 연구기관의 부정적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했다. 조직내 투서가 난무하고 갈등과 분열로 점철돼 지방의회나 언론의 질타를 받는 일도 많았다. 한영주 초대 원장을 비롯, 남충우, 신기덕, 원도연, 김경섭, 강현직, 김선기, 권혁남 등 역대 원장은 8명인데, 일부는 지사 선거에 깊이 관여하면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원장은 자신을 연임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말을 바꿔타고 도지사의 경쟁자를 돕는가 하면, 낙점받지 못한 지원자 중에는 지사 경선 캠프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공모를 앞두고는 캠프 인사 낙점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훗날 사실무근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사 캠프에 몸담지도 않았고 평소 지사와 두터운 친분이 있는것도 아닌 이남호 전 총장의 발탁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실용인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모에는 6명이 응모했는데 전북연구원은 17일 이사회를 열고 원장 후보자로 이남호 전 전북대 총장을 의결했다. 3년 임기의 신임 원장은 도의회 인사 청문회를 남겨두고 있는데 이는 기속행위가 아니기에 사실상 원장으로 확정된 셈이다. 남원 아영 출신인 이남호 원장 후보자는 전주고, 서울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지난 2014년부터 4년간 제17대 전북대총장을 지냈는데 정년을 2년 앞둔 상태에서 지난 2월말 명예퇴직한 바 있다. 지역정가에서는 그의 갑작스런 명퇴를 두고 정치입문설이 나돌기도 했으나, 이번에 전북연구원장을 맡게됨으로써 현실정치와는 일정 부분 선을 긋고 지역발전에 헌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9번째 전북연구원의 조타수 역할을 맡게될 이남호 후보는 총장 재직시절 빼어난 경영 마인드와 인생의 좌우명인 궁신접수(躬身接水 옥으로 만든 술잔도 주전자 아래 있어야 물을 받을 수 있다는 뜻) 에서 알 수 있듯 겸허한 자세로 살아왔기에 바야흐로 도약하려는 전북의 발전 청사진을 제대로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대가 큰 만큼 그의 어깨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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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5.17 14:55

블라인드 채용, 블라인드 심사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연구기관에 대해 우선적으로 전면 폐지하겠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그 이유를 ‘블라인드 채용이 최근 몇 년 동안 우수 연구자 확보를 막았기 때문’이라고 전제했다. 우수연구자 확보를 블라인드 채용이 어떻게 얼마나 막았는지 궁금하지만, 아직 타당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블라인드 채용은 지원자의 역량만을 평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으니 편견이나 특혜를 제어할 수 있고 차별에 따른 심리적 박탈감도 덜 수 있다.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한 것이 시작이다. 사실 공고기관의 블라인드 채용은 5년이 지났지만 정부 고시로 규정되어 있을 뿐 법률적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민의 평가는 어떨까. 재단법인 교육의봄이 진행한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에 대한 국민 인식 설문조사'에 결과에 따르면 블라인드 채용 '찬성'이 70.9%(매우 찬성 39.5%, 찬성하는 편 31.4%)나 됐다. '반대'는 19.4%(매우 반대 8.1%, 반대하는 편 11.3%)에 그쳤다. 국민의 호응은 제도의 법제화에 대한 의견으로도 이어져 응답자의 67.6%가 법제화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대다수는 블라인드 채용에 꽤 높은 점수를 준 셈이다. 실제 그 성과를 두고 일부 논란이 있긴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은 세계적인 추세다. 그만큼 실효성이 있다는 증거다. 국회에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중심이 되어 발의한 '공공기관 및 공기업의 공정채용에 관한 법률안'이 법안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 발의에 참여한 여야 의원은 27명이나 되지만 윤 대통령의 전면 폐지 발언이 더해져 있는 상황이어서 이 법안의 시행과 정착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비슷한 연상에 블라인드 심사가 있다. 블라인드 심사는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응모자의 개인 정보를 배제하고 심사하는 방법’이다. 블라인드 심사가 도입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대학 입시, 민간기업 채용, 예술단 단원 채용 등에서 먼저 시행된 이후 다양한 분야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올해 전주대사습놀이에 블라인드 심사를 도입했다. 실력으로만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오랫동안 가장 권위 있는 국악 등용문으로 꼽혀왔던 전주대사습의 위상은 예전만 못하다. 돌아보면 불공정한 심사가 늘 화근이었다. 공정성을 앞세운 대회 방식 변화에 기대를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블라인드 심사가 대사습의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기를 바란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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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5.16 17:22

베드타운 전주의 인구위기

저출산‧고령화시대, 전북지역의 급격한 인구감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폭이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던 전주시의 인구가 최근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기준 64만7306명으로 전달보다 681명 줄었다. 올 2월에는 2013년 이후 10년 동안 유지되던 65만 명 선마저 붕괴됐다. 지난해 말 기준 65만1495명이었으니 올들어 4개월만에 약 4200명이 감소한 것이다. 전주시 인구는 2021년 9월 65만 8235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에코시티‧혁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에 따른 인근 시‧군 인구 유입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 인구가 2년 가까이 하향곡선을 이어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중앙동과 풍남동·노송동·완산동·서학동 등 원도심 지역의 인구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전북 인구는 지난 1966년 252만3000여명으로 최고치를 찍은 후 하향곡선을 이어가 2021년 3월 180만명선이 허무하게 무너졌고, 지난달에는 176만4181명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최근 전주 인근 완주와 김제지역의 인구가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보였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전북의 중심 전주는 주변 시‧군에 위치한 직장으로 통근하는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전형적인 베드타운(Bed Town)이다.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지표 조사에서 전주는 항상 근무지 기준 취업자 비중이 거주지 기준보다 낮게 나타난다. 전주에 거주하면서 주변 시·군으로 출퇴근하는 주민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즉, 교육과 서비스업이 발달해 정주여건은 타 지역에 비해 우수하지만 인구 대비 일자리는 적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베드타운은 대도시 주변에 주거기능 위주로 계획적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도시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오산·광명시 등 서울의 위성도시들이 대표적인 베드타운이다. 전주는 대도시의 위성도시가 아닌 지역의 중심도시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베드타운과 구별된다. 서울 주변 도시들은 ‘베드타운이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떼어내겠다’며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베드타운을 곧 ‘일자리가 부족한 도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도 이 같은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 전주는 일자리를 늘려 수도권 등 타 시‧도로의 인구유출을 막아야 하고, 인근 도시는 정주여건을 개선해 주거인구를 늘려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전북의 최근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전반적인 저출산의 늪 속에서 중심도시 전주와 인근 도시 모두 인구위기의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주변 시‧군의 인구를 빨아들인 전주는 일자리를 늘리지 못해 젊은층의 역외 유출을 막지 못했고, 완주‧김제를 제외한 도내 다른 시‧군들도 정주여건 개선 등 인구늘리기 시책에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베드타운 전주의 인구감소 추세는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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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5.15 11:01

2% 전북경제

전북경제 규모가 2%대로 밀려나 빨간불이 켜졌다. 인구가 176만으로 전국대비 3.4%인 반면 지역내총생산규모(GRDP)는 2%대로 밀려나면서 현상유지하기도 어렵다. 1980년대만해도 전국 대비 4%를 차지했지만 1990년대엔 3%로 떨어진데 이어 지금은 2%대로 밀려났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경제지표를 보면 전북의 현실이 암울하고 답답하다. 농업이 주를 이뤘던 1960년대는 전북의 경제력과 인구 규모가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으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1970년대 이후부터 획기적인 성장 모멘텀을 찾지 못해 인구소멸지역으로 내몰리고 있다. 2022년 전북재정자립도는 23.8%로 전국 평균 45.3%를 크게 밑돌며 전국 17개 시도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방세의 주요 세목인 취득세 지방소득세 재산세 등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타 시도에 비해 낮다. 2021년 4월 한은 전북본부 조사연구자료에서 자체 산출한 경제력 지수는 전북이 2019년 기준 5.30으로 전국 평균 6.0%보다 낮아 최하위를 기록했다. 2021년 8월 기준으로 전북지역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44.7%로 강원도 47.4% 다음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2022년 2.4분기 중 전북지역청년 고용율은 38.8%로 세종시 35.1% 다음으로 낮은 수준이었다. 전북의 이직자 중에는 20대, 남성,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이직에 의한 역외유출이 나타났고 특히 코로나 19 유행 이후 이직율이 상승했다. 전북의 도세가 약화되면서 20·30대 청년인구 유출이 심각, 전북의 미래가 암울하다. 민선자치가 시작될 당시만해도 지역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를 걸었으나 중앙정부로부터 전북 몫을 찾아오지 못해 SOC 미진으로 기업유치도 별로였다. 특히 국회의원과 단체장 같은 선출직 등의 무능으로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지 못했다. 지역특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나갔어야 했는데도 적당히 표만 얻어서 재선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도·시·군정을 운영한 게 오늘과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기업마인드가 부족한 단체장들이 기업유치성과도 올리지 못하면서 오히려 집토끼에 해당한 향토기업들만 나락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전북이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에 너무 목숨 걸었던 게 패착이었다. 새만금사업은 국책사업인 만큼 국가로 하여금 재정사업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내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국가예산을 확보 했어야 했다. 무진장 중심의 동부산악권 개발 등 권역별 개발에 박차를 가했어야 옳았다. 지금 자치단체에서 기업유치에 신경을 쓰지만 전 공정의 자동화로 일자리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는다. 막대한 인센티브를 주어가면서 기업유치 성과를 못 올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집토끼를 잘 기르는 정책으로 과감하게 정책전환을 꾀해야 할 것이다. 대기업을 유치해 전북의 산업생태계를 바꿔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향토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우선 구매해주는 정책을 펴는 게 중요하다. 공직자들이 우리 기업들을 무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면 절대로 2% 전북경제를 탈피 못한다. 백성일 주필 부사장

  • 오피니언
  • 백성일
  • 2023.05.14 17:38

‘도의회’ 가 잘 안보인다

지금 도의회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협치의 강한 기류가 형성된 가운데 그들의 역할론이 새삼 회자된다. 과거 갈등과 대립이 잦았던 때와 달리 최근 들어 ‘이슈 메이커’ 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조용하다. 관건은 이런 우호적 분위기가 실제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작동해야 할 기능이 고장 나서 그런 것이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그런 가운데 도정 파트너의 중심축인 김관영 지사와 서거석 교육감, 여당 정운천 의원 등은 여전히 팀웍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협치를 키워드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도의회 역할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민선 8기 출범 직후 산하기관장 인사청문 논란과 함께 도청 조직개편 때 상임위 간 밥그릇 싸움을 빼곤 이렇다 할 주목을 끌지 못했다. 도정 협력 기관끼리 ‘허니 문’ 기간이 길어지면서 비판 칼날이 무뎌진 건 아닌지 해석이 분분하다. 도의회 사상 첫 여성 의장 탄생도 관심의 대상이다. 국주영은 의장이 3선 최다 의원으로서 관록은 인정하지만 그에 비해 정치적 중량감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도의원 40명 중 재선 16명, 초선 22명인 상황에서 의장 선출은 불가피하지만 개인 역량에 좌우되는 존재감은 뚜렷하게 각인시키지 못했다. 특유의 섬세함을 앞세운 조직 안정에선 후한 평가다. 그럼에도 지역 정치의 대표 수장으로서 강력한 리더십은 아쉬운 대목이다. 전북은 사실 민주당 텃밭으로 집권 여당과의 소통 창구가 극히 제한돼 어려움을 겪는다. 지역 현안 추진에 도의회 응집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까닭이다. 그 중심에서 도의장 역할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도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전국적 선거 스케줄이 올해 없다는 점도 큰 변수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숨겨 놓은 발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지난달 전주을 재선거도 민주당 불참에 따라 의원들이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취했다. 막판엔 내년 총선 유리한 대진표를 포석에 두고 ‘역선택‘ 설이 파다했다. 2020년 총선 악몽을 떠올리면 짐작할 수 있다. 전주을에 출마한 이상직-최형재 후보의 불꽃 경선서 지방의원들이 앞장서 편 가르기 경쟁을 벌였다. 본인 공천과 직결되기에 지지 선언을 통해 눈도장을 찍은 것이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이런 움직임은 점차 노골화될 것이다. 역대급으로 전개되는 협치 모드에 도의회 동참 기류도 강하다. 도정의 지렛대 역할을 자임하는 대의 기관으로서 주어진 책무에 부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협치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해도 본연의 역할인 견제 감시까지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인사청문회와 도정 질의서 제기된 의혹과 문제점에 대해 당사자 답변이나 자료 제출을 통해 이를 규명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 이중 공모 지원 등과 관련해 언론에서 연일 도덕성 논란이 됐는데도 당사자의 속 시원한 해명은커녕 직계 은행 자료 제출까지 거부했다. 그런데도 어물쩍 넘어갔다. 변죽만 울린 도의회 존재 이유를 곱씹어 보는 이유다. /김영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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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곤
  • 2023.05.11 18:40

두터움 갖춘 전북의 원로

며칠 전 전주발 부음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전주가 낳은 세계적인 프로기사 이창호 9단의 아버지이자 매니저인 이재룡씨(75)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현대바둑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오청원과 더불어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독보적인 천재 프로기사 2인 중 한 명이 바로 이창호인데 맨 먼저 그의 기재를 알아본 이가 바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마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헌신으로 아일랜드 이민자 후손으로서 대통령이 된 케네디와 흡사하다. 훗날 전문기사에게 아들을 맡긴 이후에도 이재룡씨는 매니저 역할을 묵묵히 하게 된다. 마치 최동원, 선동열의 아버지 같은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전주시 중앙동 웨딩거리에 가면 전주시 미래문화유산 12호인 이시계점이 있다. 이창호가 태어난 곳인데 43건의 전주미래유산 중 하나다. 4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이화춘)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 이창호를 오늘날 전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키워낸 이는 매니저였던 아버지였다. 이정옥, 전영선을 사사하며 무섭게 성장한 이창호는 10살때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간다. 이후 이창호는 세계 최다연승(41연승)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근현대 물리학계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듯이 현대바둑에서 오청원과 이창호는 전인미답의 경지에 오른 천재다. 대만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한 오청원이 신포석을 개발해서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고 한다면, 이창호는 두터움 이란 세글자로 대표된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프로기사의 영역을 뛰어넘어 일본, 중국을 비롯한 세계무대를 석권한 이가 바로 이창호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제대로 키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 이화춘씨나 이재룡씨야 말로 특정 분야에서 전세계 1위로 만든 장본인이다. 단순히 아들을 어여삐 여기는데 그치지 않고 사람보는 냉철한 눈이 있었다는 얘기다. 진시황제 사후 혼란에 빠진 중원의 패권을 놓고 한나라 고조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명운을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일 때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은 유방의 대원수 한신이었다. 통일 이후 멸문지화를 당하면서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으나 한신의 활약이야말로 단연 압권이었다. 고사성어 다다익선의 주인공 한신은 그런데 무명 시절 초나라 항우 진영에서 요즘으로 치면 위관급 장교정도 되는 집극랑 이란 직책에 머물러야 했다. 하늘이 낸 재주를 지닌 한신을 제대로 알아본 이는 천하를 손에 쥐었고, 그를 위관급 장교 정도로 여겼던 항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사람보는 눈이 있느냐, 없느냐 딱 하나의 차이였다. 오늘날 침체일로에 빠진 전북에 진정한 원로가 없고 원로의 역할은 더더욱 없다고 한다. 선수로서 자신의 역할이 끝났으면 감독으로 빛을 발해야 하는데 관객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않고 무대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적지않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 영역에서 이제 더 이상 근천떨지말고 역량있는 후배들을 키워내는 진정한 원로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게바로 이창호가 지향하는 두터운 바둑이다. 지역도 살고 자신도 사는 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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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5.10 15:30

동네책방이 늘어나는 이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리소문없이(?) 관심을 끈 영화가 있다. 나카무라 코타 감독의 <동네책방 폴란>이다. <폴란>은 출퇴근 시간에만 유동 인구가 있는 도쿄 서북쪽의 전형적인 베드타운 네리마구, 그 중심에서도 조금 더 떨어진 한적한 동네에 있는 책방이다. 책방 주인은 이시다 교스케씨 부부. 이들은 중고책을 다루는 작은 동네 책방을 개업 초기부터 함께 해온 점원 유키 씨와 함께 음악회나 낭독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어 단순한 책방이 아닌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돕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덕분에 <폴란>은 주민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갑자기 밀어닥친 코로나의 위기로 존립을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결국 쌓여가는 월세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주인 부부의 선택은 폐업. 어린 시절, 이 책방을 드나들었던 나카무라 감독은 책방의 폐업 소식을 듣고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제작된 <동네책방 폴란>은 35년 동안 운영해온 중고 책방을 폐업하기로 한 뒤 문을 닫기까지 한 달 동안 이 책방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담은 다큐다. <폴란>이 문을 닫은 것은 코로나가 절정에 이른 2021년 2월. 폐업을 준비하며 치루는 할인행사, 더러는 포장되지만 더러는 종이 더미가 되어 폐지 처리장으로 실려 나가는 재고 서적들, 오랜 시간 새로운(?) 헌책을 품었던 책장이 해체되는 과정은 드라마틱하기 보다 일상적이고 애틋하다. 폐점을 앞두고 책방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이시다 사장은 ‘여러분 덕분에 행복했다’며 눈물로 인사를 한다. 일본 작은 도시 변두리의 동네책방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사이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자리잡은 우리의 동네책방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목할만한 흐름이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해마다 늘고 있는 우리나라의 동네책방들이다. 주식회사 동네서점에 따르면 2022년 12월 현재, 동네책방은 815곳이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1년 사이 70곳이 늘었다. 전북은 일곱 개가 새로 문을 열어 31곳이 됐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중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책방이 합류한 지역이다. 경제 활동이 원활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동네책방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들여다보면 이제 동네책방은 단순히 책만 사고파는 서점이 아니다. 책을 읽고 교류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으로 문화적 삶을 꽃피우는 공간이다. 커피와 차가 있는 책방,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책방, ‘큐레이션’ 책방, ‘북스테이’ 책방 등 기능도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문화의 중심에 선 동네책방의 행렬이 반갑다. 관심과 참여가 더해지면 좋겠다.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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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5.09 17:40

‘완산벙커’의 변신, 기대와 우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과 관군의 격전지였던 전주 완산칠봉은 현재 삼나무와 전나무 숲이 우거진 도시공원(완산공원)으로 조성돼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봄철 겹벚꽃과 황매화·철쭉이 장관을 연출하는 이곳 꽃동산에는 상춘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주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 산자락 초입 공영주차장 인근에는 입구에 출입금지 안내문이 내걸린 범상치 않은 지하시설물이 있다. 전쟁 등 위기 상황에 대비해 방공호와 군·경찰‧전북도의 지휘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완산벙커’다. 1973년 조성돼 올해로 꼭 반세기가 된 이 지하벙커가 전통문화도시의 독특한 예술공간으로 변신한다. 지난 2006년 용도폐기된 이 냉전시대의 산물을 미디어아트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시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볼거리‧즐길거리를 제공한다는 게 전주시의 청사진이다. 개미굴 형태로 만들어진 벙커 안의 각 방을 시간의 강, 우주의 지도, 에일리언, 멀티버스 등으로 이름 붙인 뒤 빛과 영상을 통해 우주 공간, 4차원 세계 등을 다양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완산벙커를 리모델링해 새로운 문화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전주시의 계획은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 기본계획 수립 연구대상지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화됐다. 지난해 시공업체를 선정한 전주시는 관광거점도시 예산 20억원과 시비 49억원 등 총 69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내년 상반기에 새로운 시설을 개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시설 명칭을 공모하면서 다시 관심을 끌었다. 공모에는 모두 600여 건의 응모작이 접수됐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던 이 지하벙커의 문이 열린다. 전시(戰時)를 대비해서 도시 외곽 산자락에 만들어 놓은 옛 충무시설이 앞으로 1년 후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시민과 관광객들을 맞을지 사뭇 기대가 크다. 용도폐기된 지하벙커를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키거나 재생사업을 추진한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북도를 비롯한 전국 각 시·도가 청사를 새로 지으면서 규정에 의해 신청사 지하에 충무시설을 설치했고, 그에 따라 용도를 잃은 옛 시설물 활용방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전국 지자체들이 지하도나 벙커의 공간혁신을 추진하면서 대부분 이미 유명세를 탄 제주 ‘빛의 벙커’와 ‘아르떼뮤지엄’, 담양 ‘딜라이트 미디어아트 전시관’을 모델로 하고 있다. 사업방향을 미디어아트로 정한 전주시도 이들 시설을 벤치마킹했다. 전국의 지하벙커가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가는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모두 똑같거나 닮은꼴의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적어도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된 대한민국 대표 문화관광도시 전주의 문화재생 공간은 달라야 한다. 제주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 형태의 미디어아트 공간이 아닌,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반영한 독창적인 문화공간이어야 한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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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5.08 11:00

총선결과가 전북발전 좌우

올해로 전북은 도제(道制)를 마감하고 내년부터 특별자치도 시대가 열린다. 지난 3일 각계 240여 명이 서울 스위스그랜드 호텔에 모여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를 발족, 더 특별한 전북시대를 맞자고 결의했다. 상당수 도민들이 매스컴을 통해 연일 특별자치도 뉴스를 접하지만 관심부족으로 그 내용을 잘 모른다. 전국에서 특자도와 시로 제주 강원 세종이 지정됐다. 내년 1월18일부터는 전북의 명칭이 전북특별자치도로 바꿔지면서 모든 행정이 특자법에 따라 운용된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전북특자도법은 우선 큰 얼개만 갖춰서 통과한 법이라서 내용이 빈약하다. 그래서 전북도가 제주와 강원도법을 벤치마킹, 실질적으로 도움 되도록 하려고 특례조항을 담아 연내에 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전북은 전국 꼴찌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간 전북은 진보가 정권 잡았을 때가 전북발전의 기회였지만 그걸 못 살리고 허송세월 한 바람에 오늘 같은 낙후가 만들어졌다. 이제 와서 누굴 탓하고 원망할 때도 지난 것 같다.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바깥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지만 전북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갇힌 세상을 살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친 사람도 없고 모두가 자기 앞에 큰 감만 놓으려고 아귀다툼했다. 말로만 형 동생하는 그릇된 문화만 횡행했지 서로가 상생하려는 모습은 안보였다. 아무리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지만 서로 뒤통수나 치고 사는 사회로 막가다 보니까 신뢰가 구축되지 않았다. 농업이 주를 이뤘던 전북이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생태계를 제대로 전환시키지 못해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특히 3번 진보정권을 탄생시켜 놓고도 정치권의 무능으로 전북 몫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지사·국회의원·시장·군수 등 선출직을 잘못 뽑은 게 결정타였다. 이들은 입신양명하기에 바빴고 이웃 광주 전남 들러리 서주는 것으로 끝났다. 임기내 내세울만한 뚜렷한 업적이 없다. 1995년 민선자치가 본격 시행되었지만 제왕적 위치에서 조자룡 헌칼 쓰듯 인사권만 남용,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도민들이 권리위에서 실컷 낮잠을 잔 꼴이 돼버렸다. 전북이 명칭만 특자도로 바꿔져선 안된다. 도민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도록 기업유치와 국가예산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제도의 변화에 따라 지역발전이 이뤄지도록 지혜를 모아 함께 혁신해야 한다. 그간 무능한 사람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해선 곤란하다. 지금은 운동권 출신 대신 전문가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야 한다. 민주당 일당독식구조를 끝내고 여야가 경쟁적으로 전북발전을 모색하도록 경쟁의 정치시대를 열어줘야 한다. 도민들이 정치의 근본틀을 바꿔주지 않으면 전북발전은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특자도 시대를 맞아 미래로 발전해 갈 것인지 아니면 과거로 회귀할 것인지가 내년 총선결과에 달려 있다. 그간 지역정서에 함몰돼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고 막가파식 싹쓸이 선거가 지역을 망쳤다.그래도 계속할 것인가. 백성일 주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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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23.05.07 18:05

새만금 트로이카(Troika)

지금부터 약 30여년 전인 1990년대 초 한양대학교 고시반. 저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틀어박혀 열정을 불태우던 전북 출신 3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나이나 학년은 달랐으나 완주, 진안, 김제에서 상경해 향학열에 불타던 3인은 결국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한 명은 행정안전부에서, 한 명은 농식품부에서, 또 한 명은 전북도청에서 각자 공직생활을 했는데 며칠 전 운명처럼 같은 직장에서 조우하게 됐다고 한다. 임상규 행정부지사, 김종훈 경제부지사, 최재용 새만금해양수산국장의 이야기다. 열흘전 임상규 행정부지사가 부임하면서 학창시절 이후 무려 30여년만에 이들은 한 공간에서 근무하게 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고시반 학생들은 종종 회식을 하기도 했는데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임상규, 김종훈 딱 둘이었다고 한다. 한양대 고시반때부터 이들은 트로이카(Troika)로 불리기도 했다는데 공직 막판 투혼을 불살라 지역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트로이카란 러시아어 형용사로 ‘3의’ 라는 뜻이다. 러시아에서 널리 쓰였던 말 세 마리가 끄는 마차를 의미하는데 원래의 뜻이 바뀌어 트로이카 하면 어느 집단에서 가장 돋보이는 세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다.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정치를 이끄는 것을 삼두정치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로마시대 제1차 삼두정치(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제2차 삼두정치(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를 들 수 있다. 권력을 한사람에게 맡기자니 독재로 흐를것 같고, 두사람에게 나눠 맡기면 으르렁대며 싸우기 쉽기에, 고안해 낸 것이 삼두체제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전혀 다른 법, 잠시 1차 삼두정치를 하다가 카이사르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고, 그가 암살당한뒤 힘의 공백기에 시행된 2차 삼두정치 역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10∙26 이후 최규하 과도정부 하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씨는 삼두정치 비슷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권에 다가선 듯 했으나 결과는 전두환 장군의 쿠데타였다. 1995년 민선단체장 체제 도입이래 김관영 지사, 서거석 교육감, 국주영은 도의장의 트로이카 체제는 가장 돋보이는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지사와 국민의힘 정운천, 민주당 한병도 도당위원장 간 트로이카도 잘 작동되는 것 같다. 그런데 새만금사업의 실무사령탑격인 지사, 새만금개발청장,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간 트로이카 체제는 원활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위상 측면에서 민선도지사는 부총리급에 버금가고, 새만금개발청장은 수많은 차관급 자리중 가장 선호도가 낮은 것 중 하나이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작은 공사 사장일뿐이기에 여기에 트로이카 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좀 어색해보인다. 하지만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위상을 떠나 지사, 청장, 사장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분열된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위병기
  • 2023.05.0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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