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트로이카(Troika)
지금부터 약 30여년 전인 1990년대 초 한양대학교 고시반. 저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틀어박혀 열정을 불태우던 전북 출신 3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나이나 학년은 달랐으나 완주, 진안, 김제에서 상경해 향학열에 불타던 3인은 결국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한 명은 행정안전부에서, 한 명은 농식품부에서, 또 한 명은 전북도청에서 각자 공직생활을 했는데 며칠 전 운명처럼 같은 직장에서 조우하게 됐다고 한다. 임상규 행정부지사, 김종훈 경제부지사, 최재용 새만금해양수산국장의 이야기다. 열흘전 임상규 행정부지사가 부임하면서 학창시절 이후 무려 30여년만에 이들은 한 공간에서 근무하게 됐다. 전국에서 모여든 고시반 학생들은 종종 회식을 하기도 했는데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임상규, 김종훈 딱 둘이었다고 한다. 한양대 고시반때부터 이들은 트로이카(Troika)로 불리기도 했다는데 공직 막판 투혼을 불살라 지역발전에 혁혁한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트로이카란 러시아어 형용사로 ‘3의’ 라는 뜻이다. 러시아에서 널리 쓰였던 말 세 마리가 끄는 마차를 의미하는데 원래의 뜻이 바뀌어 트로이카 하면 어느 집단에서 가장 돋보이는 세 사람을 비유하는 단어다. 세 명의 주요 인물이 정치를 이끄는 것을 삼두정치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게 로마시대 제1차 삼두정치(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제2차 삼두정치(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를 들 수 있다. 권력을 한사람에게 맡기자니 독재로 흐를것 같고, 두사람에게 나눠 맡기면 으르렁대며 싸우기 쉽기에, 고안해 낸 것이 삼두체제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전혀 다른 법, 잠시 1차 삼두정치를 하다가 카이사르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고, 그가 암살당한뒤 힘의 공백기에 시행된 2차 삼두정치 역시 옥타비아누스가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10∙26 이후 최규하 과도정부 하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소위 3김씨는 삼두정치 비슷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권에 다가선 듯 했으나 결과는 전두환 장군의 쿠데타였다. 1995년 민선단체장 체제 도입이래 김관영 지사, 서거석 교육감, 국주영은 도의장의 트로이카 체제는 가장 돋보이는 찰떡궁합이라고 한다. 지사와 국민의힘 정운천, 민주당 한병도 도당위원장 간 트로이카도 잘 작동되는 것 같다. 그런데 새만금사업의 실무사령탑격인 지사, 새만금개발청장,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간 트로이카 체제는 원활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위상 측면에서 민선도지사는 부총리급에 버금가고, 새만금개발청장은 수많은 차관급 자리중 가장 선호도가 낮은 것 중 하나이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은 작은 공사 사장일뿐이기에 여기에 트로이카 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좀 어색해보인다. 하지만 새만금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위상을 떠나 지사, 청장, 사장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분열된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