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정치부장)
인류의 출현은 400만년 전으로 거슬러 가지만, 역사 속의 인류는 5000년 정도다. 수렵과 목축 등으로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살던 인간은 농사짓는 법을 발명한 후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도시국가를 이뤘다. 성 안의 왕과 관료는 성 밖의 농민들로부터 세금을 받아 축적한 군사력으로 외부를 방어하고, 혹은 침략을 통해 지배권을 확장했다. 유럽의 역사, 아시아의 역사, 신대륙의 역사가 그렇다. 19세기 제국주의시대, 20세기 초의 1·2차 세계대전, 수많은 국지전들이 언어와 종교, 종족 등으로 뭉친 세력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벌인 전쟁들이다. 승리를 쟁취한 민족, 국가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려왔다.
정복과 살생의 역사, 그 이면에는 항상 먹거리가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른 민족을 공격하고 학살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후 영국, 프랑스 등으로부터 엄청난 전쟁 배상금을 청구받았다. 미국의 원조하에 가까스로 경제력을 회복했지만, 주변국의 압력과 나치스 출현, 미국발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미국을 견제하고 아시아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하와이를 폭격했다. 하지만 미국은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차 대전에 이어 2차 대전도 승리로 이끌었다.
역사 속에서 전쟁승리는 생존의 열쇠였다. 그 열쇠는 항상 경제력이었다. 꼭 그러한 것은 아니었지만, 장군의 지략과 병사들의 강인한 전투력 뒤에는 경제력이 뒷받침하고 있었다.
현대전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세계 경찰로서 위상을 굳힌 것은 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군사력 때문이다. 2차대전 패전국 일본이 세계 제2위의 이지스함을 보유한 군사 강국이 된 배경도 막강한 경제력이다. 강력한 방공능력을 갖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해상 전투함으로 꼽히는 이지스함은 한 척을 건조하는데 수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2020년까지 이지스급 거함 몇척을 띄우는 작업이 진행중이지만, 천문학적인 건조비를 생각하면, 경제력 없는 군사력이란 꿈도 꿀 수 없다.
세계사는 항상 경제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우리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FTA 역시 역사속에서 인류가 벌여온 전쟁의 한 단면이다. 한·칠레에 이은 한·미간 협정이 체결되면, EU와 일본, 중국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말이 좋아 협정체결이지 서로의 이익을 더 차지하기 위한 경제전쟁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닌, 먹고 사는 문제”라고 한 것은 의미가 있다.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매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문제는 그 전쟁 속에서 희생당하는 사람들, 바로 농민과 의료 소비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명쾌하게 제시돼야 한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농업분야의 경우 일정한 관세철폐 또는 인하기간을 둬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시간을 확보했다, 농가 소득보전과 폐업보상 등 지원을 통해 경쟁력 있는 전업농을 육성하겠다며 사뭇 당당하다. 하지만, 생존기반을 잃게 된 농민들은 불안할 뿐이다.
이번 FTA로 인해 국민들이 먹는 약값이 오르는 것도 문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환자들은 비싸진 약값 때문에 더욱 힘들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번 FTA가 우리에게 이익되는 협상, 주도적인 협상이었다는 주장에 앞서 해결해야 할 것은 향후 피해가 있는 분야, 어려워지는 분야에 대한 밀도있는 대책을 고민하고 또 확실히 제시하는 것이다.
고급육을 생산해라, 친환경적인 농산물을 생산해라, 그래야 세계화 속에서 경쟁력을 높여 성장할 수 있다. 입바른 소리지만, 서민들에게는 솔직히 힘든 주문 아닌가. 정부는 의기양양하지만, 농민들은 힘든 전쟁을 계속해야 할 상황이다.
/김재호(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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