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선(군산대교수)
프랑스 대선은 우파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미 예상했던 대로 프랑스는 대선 이후 소요에 가까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르코지의 승리로 가장 불안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6천만 인구 중 500만에 달하는 이민자들이다. 이민자들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신자유주의에 동조하는 우파 정부의 출현으로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다.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차량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을 뉴스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심정은 참으로 기묘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나라 80년대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문제는 우리 역시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그와 같은 역동적인 광경을 기대할 수 없는 정치적 패배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비록 프랑스인들이 사회적 약자에게서 등을 돌리는 정치적 결정을 내렸지만, 여전히 많은 프랑스인들은 사회적 불평등 문제에 관한 정치적 해결의 가능성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역시 이번 대선을 군수업자와 거대기업의 편에 서서 정치적 실정을 거듭해 온 부시와 공화당에 대해 정치적 심판을 내리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불쌍한 것은 한국인들이다. 한국인들은 불과 몇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어떤 정책의 잘못을 심판해야 할지, 어떤 정책적 대안에 희망을 걸어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덜 나쁜 사람을 할 수 없이 대통령으로 뽑아야 하는 노역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여론 조사 결과 1, 2위를 다툰다는 야당의 대선후보들은 경선을 어떻게 할 것인지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서로 막말을 해가며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한편, 진보를 표방했으나 결과적으로 경제적인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서민들로부터 삶의 희망을 앗아간 여당은 사분오열된 채 정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지역주의에 편승해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후진성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군사독재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의 축제가 되어야 할 대통령 선거가 인물론이나 오가는 자조적인 가십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노대통령이 앞으로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사회가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만, 문제는 발전의 내용이다.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다수의 한국인들이 미래의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국가적 어젠다를 제시할 수 있는 대통령이 누구인지를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다. 이것은 대선 주자의 인물됨이나, 학벌, 도덕성보다 그가 누구를 위한 정책을 펼 인물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덜 부패한 인물 뽑기가 아니라 좌, 우파의 정책 대결이 될 때 한국인들은 정치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유선(군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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