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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소리꾼과 약장수 - 남형두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개봉되었다. 그런데 애초부터 흥행에 초점을 맞추지 않아서 그랬는지 천만 관객 영화가 간혹 있는 영화판에서 백만조차도 올리지 못하고 막을 내리고 말았다. 사실 흥행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전편인 ‘서편제’의 그늘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과 달리 단관 개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만 관객을 넘겨 당시로서는 요즘 천만 관객 못지않게 뉴스가 되었던 서편제는 얼마 전 문화부장관직에서 물러난 김명곤과 후편에서 더욱 그 소리와 자태가 무르익은 오정해라는 배우를 스타덤에 올려놓았고, 무엇보다도 판소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영화였다.

 

영화 서편제에 이런 장면이 있다. 아직 장이 서지 않았는지 한적한 장터에 어린 송화(오정해 분)가 동생 동호의 어설픈 북소리에 춘향가를 부르고, 한쪽에서는 약장수가 그럴듯하게 포장된 약상자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쌓아둔다. 송화의 애끓는 이별가 대목에 사람이 한둘 모이고, 소리가 끝나자 송화는 약병을 들고 구경꾼들 사이에서 팔고 다닌다. 송화의 아버지이자 몰락한 소리꾼 유봉이(김명곤 분)는 멀찌감치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 장면을 보다가 “이깟 소리는 혀서 뭐혀”라고 외치면서 약상자가 놓여있는 테이블을 쓸어버리고 이내 판은 깨진다.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세월은 흘러 영화 속 시대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이깟 소리는 해서 뭐하냐고 외쳤던 유봉이가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책임지는 문화부 수장이 되었으니 변하긴 많이 변한 것 같다. 한창 활동할 젊은 나이에 연극이나 판소리와 같이 돈 안되는 일만 골라하다가 폐병까지 걸려 죽을 뻔 했다는 그가 문화부장관이 되었을 때 마침 문화산업이 우리 경제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큰 기대가 있었다. 장관이 바뀐 뒤로 문화부 공무원들의 옷차림이 달라지고 각종 문화 관련 행사를 주관하는 이 기관은 정부부처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렁물렁해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도 잠깐, 허기를 달래며 연극대본을 외웠을 그가 그 뜻을 충분히 펴기도 전에 ‘바다이야기’ 뒤치다꺼리와 몇몇 국제스포츠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더니 이내 경질되고 말았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특별히 무슨 잘못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장관 재임기간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년 남짓 재임하였으니 장수(?)하였다고 할 것인지...

 

우리나라의 제조업을 삼켜버린 중국이 최근 인건비가 급상승하여 상당수의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기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첨단 기술 산업이나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강한 몇몇 제조업종을 제외하고는 값싼 노동력의 중국을 당해낼 도리가 없는 우리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 협상을 비롯한 각종 정부정책 수립과정에서 약이나 연필 몇 자루 팔기 위해 공짜 소리를 해야 했던 지난 세기처럼 여전히 제조업에 문화산업이 뒷전에 밀리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약 보다 훨씬 비싼 소리를 놔두고 여전히 약만 팔고 있을 건가?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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