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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묵점 기세춘 선생의 논어 강좌 - 윤승용

윤승용(본보 객원논설위원·前 청와대 대변인)

바야흐로 보수의 계절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반년도 채 지나기 전에 정치는 물론 경제, 교육, 이념, 외교안보 등 전방위적으로 '보수 만세''보수 만능'을 외쳐대고 있다. 이 같은 '보수전성시대'에 "진짜 보수는 그런 게 아니다"며 동양사상에서 보수의 교과서라 할 '논어(論語)'를 교재로 '참 보수는 개혁이다'고 갈파하는 강좌가 우리 고향 전주에서 개설돼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재야 한학자겸 동양철학자인 묵점(墨店) 기세춘(奇世春.71)선생이 이번 학기들어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주 1회 강의하는 '동양고전' 강좌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배가 위세를 더해가던 1937년 전북 정읍시 북면에서 태어난 선생은 여러모로 독특한 사람이다.

 

조선 중기 대성리학자인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의 후예인 선생은 어려서부터 전통 한학수업을 받다가 뒤늦게 공식학제공부를 시작, 전주사범을 거쳐 전남대 법대를 중퇴했다. 그후 신영복선생 등과 동학혁명연구회를 조직, 활동하다 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는 등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중국 고전과 시가공부에 천착했다.

 

사실상 독학하다시피 중국 경서를 섭렵한 선생은 어느 날 홀연히 우리가 오늘날 배우고 있는 사서삼경 등이 본래의 뜻을 벗어나 '위정자 중심'의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고 이를 시정하기위한 힘들고도 고된 장정에 나선다. 선생은 1992년 그 첫 결실로 '천하에 남이란 없다-묵자 上 下'를 출간했는데 묵자가 우리나라에 완역되기는 처음이었다. 이어 1994년 신영복 선생과 공역으로 '중국역시 시가선집' (전 4권)을 출간했는데 이 책도 현존하는 유일본이다. 또한 같은 해 문익환 목사와 공저로 '예수와 묵자'를 출간했으며 2년후에는 '우리는 왜 묵자인가', 다음해에는 '주체철학 노트'를 출간했고 2002년에는 '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 시리즈'로 '유가' '묵가''도가''주역' 등 4권을 출간했다.

 

선생의 책들은 출간 때마다 기존 학계를 벌집 쑤신 듯 들쑤셔 놨다. "시중의 동양 고전 번역서를 모두 수거해 불살라 버려야한다"는 과격주장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은 "기존 고전번역서는 왜곡과 변질, 오역으로 범벅돼있다"고 단언한다. 선생에 따르면 노장사상은 도교가 일어나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으면서 신비학으로 왜곡됐고 정치권력에 의해 체제에 순응하는 은둔과 청담의 사상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선생은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논어를 관통하는 정신은 당대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나라 초기의 문란치 않은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체제개혁이었다"며 "진정한 보수란 인류가 지켜야할 올바른 가치를 회복하기위해 개혁해 나가는 것"이라고 촌평했다. 선생은 젊어서 고향을 떠난 후 객지에서만 떠돌다가 1990년대 말 수도권에 거주하는 전북출신 민주인사들의 모임인 '전북민주동우회(전민동)'을 알고 부터 고향 후배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그간 서울과 대전 등지에서만 강의를 하는 바람에 이번 강좌는 고향에서의 첫 정기강좌여서 마음이 설렌다"는 기 선생의 강의는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동안 열린다. 이 가을에 웬만한 청년보다 더 열정적인 기 선생의 강의에 흠뻑 빠져보는 즐거움에 필자도 벌써부터 주말이 기다려진다.

 

/윤승용(본보 객원논설위원·前 청와대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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