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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물위를 걷는 법 - 유영대

유영대(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은 하나의 멋진 공연이었다. 최고의 천재예술가 장예모가 연출한 거대한 드라마였다. 제대로 훈련된 수많은 사람들이 펼치는 거대한 매스게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었다. 폭죽을 무한대로 쏘아 올려 북경 시내가 환하게 밝았다. 성화를 든 사나이가 거대한 운동장의 상단을 날아서 성화대에 불을 지피던 장면에서 경탄하였다. 개막식을 지켜보던 세계인들은 아마도 그 막강한 물량과 빛나는 상상력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다음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나라는 어쩌라고'하는 탄식마저 들렸다.

 

예전에 홍콩 무협영화에는 하늘을 날거나 물위를 차고 걸어다니는 장면이 유난히 많았다. 하늘을 날거나 물위를 걷는 일은 인간의 소망을 원초적으로 드러낸다. 나는 물위를 걷는 법을 어려서부터 들어서 알고 있다. 물위를 걷는 방법은 왼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오른발을 딛어야 되고, 오른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왼발을 물에 디디면 된다. 그런데 실제로 물가에 이르러 그 방법을 시도해보지는 못했다.

 

장예모는 중국의 명승지에 세편의 거대한 야외공연물을 만들었다. 인상(印象)시리즈로 불리는 이 공연은 운남성의 리장(麗江)에서 시작되었다. 인상·리장은 히말라야의 눈덮인 산을 원경으로 하고, 마을의 뒷산을 무대로 삼아서 중국 각지의 소수민족들이 펼치는 거대한 뮤지컬이다. 전문배우가 아닌 마을 주민들 수백명이 매일 펼치는 이 인상적인 공연 인상·리장으로 해서 이 마을은 갑자기 세계 관광객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소수민족이 간직하고 있는 전통적인 노래와 춤들이 거대한 무대에서 현란한 빛을 받으면서 갑자기 최고수준의 예술작품이 되었고, 이 작품으로 해서 마을 자체가 새로운 세계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장예모의 인상·류산지(劉三姐)는 중국의 절경인 계림의 한 마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이다. 이 마을은 계림에서 배를 타고 이강(離江)을 네시간 동안 내려가면서, 동양화와 아주 닮은 산수와 풍광을 감상하면서 닿게 되는 종착역이다. 마을 주민들은 계림에서 배로 내려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살아왔으며, 가마우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지방색이 또렷한 마을이었다. 장예모는 이곳에 근사한 초대형 뮤지컬을 보태서 종전과는 또다른 명물을 만들었다. 이 작품에는 700 여명이 등장한다. 아주 두툼한 대나무 다섯 개를 묶어 만든 100여 척의 대나무 배와 마을 어부들이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원경에는 동양화에서 보이는 것과 꼭 같은 12개의 봉우리가 하얀 조명을 받아 신비감을 돋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산수실경극장(山水實景劇場)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계림의 9월은 무더웠고, 밤에 펼쳐진 인상·류산지는 그 무더위를 산뜻하게 식혀주는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장예모 특유의 붉은 색 천이 이강의 드넓은(1.65 평방킬로미터) 무대에서 한없이 펼쳐진다. 100 명에 가까운 배우들이 능숙한 솜씨로 물위를 걸으면서 이 붉은 천을 펼쳤다가 오므리면서 자유롭게 춤추면, 그곳은 강렬한 원색 빛의 천지를 이루었다. 마을의 토착적인 민요는 어린이들이 수도 없이 나와서 함께 불렀다. 새로이 작곡된 음악은 모던하면서도 대중의 취향을 적절히 섞어서 조화롭게 무대를 채웠다.

 

거기서 나는 비로소 물위를 걷는 법을 제대로 배우고 왔다. 이강의 물아래 10cm쯤에 무대를 만들어두고 훈련된 배우들 수백 명이 그 위를 뛰어다닌다. 조명이 적절히 배우들을 비추고 중국의 짜장면 냄새가 밴 음악소리가 계림의 산수와 어우러질 때, 나는 비로소 물위를 걷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요새 전주에서는 세계 소리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나는 전주에서 장예모의 인상 시리즈와 같은, 토착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멋진 공연이 늘상 무대에 오르고, 객석 3천개가 매일매일 매진되는 공연을 개발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세계를 압도하는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유영대(고려대 교수·국립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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