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사회부장)
지난 10월 초순, 전주 한 지역구의 A국회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평소 알고 지내는 A의원은 자신의 측근과 관련된 기자의 법원 판결기사를 문제 삼았다. 그는 "한 기사에서 내 이름을 네번씩이나 내주었는데 고맙다. 그런데 내가 (법적으로) 걸면 걸 수 있다. 내가 이긴다"라고 말했다. 그의 단조로운 말 속에는 비아냥과 분노, 그리고 협박이 들어 있었다. 기자는 A의원에게 "한 번 해보시지요"라고 응대했다. 둘 사이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기자는 전화를 끊었다.
A의원이 문제삼은 기자의 기사는 그가 지난 18대 총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의 선거 참모 B씨가 유권자들에게 3만여건의 문자 메지시를 발송한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부에 의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다.
B씨가 A의원의 핵심 참모인데다 당내 후보경선을 앞두고 A의원의 지지를 유도하는 문자 메시지를 대량 발송한 사건인 만큼 법원의 판결기사에서 A의원이 거론될 수 밖에 없었다. 기자는 법원 판결 당시 국회의원 예비후보도 아닌 정정당당 '국회의원' 신분이 된 그의 이름을 실명으로 처리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언론은 선출직 공무원이 된 국회의원이 선거법을 얼마나 잘 준수했는지 유권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 다음 선거에서 투표할 때 참고하도록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B씨가 A의원을 위해 그동안 수차례 공직선거를 치렀고, 그 과정에서 선거법을 한차례 위반했다가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을 주목했다. 재판부는 또 B씨가 A의원이 지난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수혜조로 비서관으로 채용돼 일해온 사실도 엄중 지적한 뒤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선택하고, 집행유예에 처했다.
유감스럽게도 A의원은 언론인 출신이다. 지방일간지와 중앙일간지를 거쳤다.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몇 안되는 지역 인물이다. 언론인 출신의 A의원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 기사도 아니고, 중상모략성 기사도 아닌, 자신을 위해 뛴 선거참모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기사에 흥분, '걸 수 있다'며 기자를 협박하는 발언을 한 사실은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으로서 남의 허물을 어떻게 지적할지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사람들은 공직에 입문하기 전, 관련 분야의 전문성이나 실무능력을 떠나 자신이 가장 도덕적이고 균형을 갖춘 인물이라는 사실을 은연 중에 주변에 풍기며 활동을 한다. 하지만 A의원의 전화 한 통은 언론이, 그리고 유권자들이 선출직 공무원(또는 후보)들을 얼마나 꼼꼼히 잘 살펴보고, 또 감시해야 하는가를 잘 시사하고 있다. 그들의 무감각을 말이다.
한마디 말 때문에 국회의원 신분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하자 자신에게 적용된 선거법 조항이 위헌 여지가 있다며 위헌심판제청을 신청한 국회의원, 거액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끝까지 인정하려 들지 않고 버티는 야당의 최고위원 등 우리 주위에는 법과 원칙에 무감각한 사례가 너무 많다. 이처럼 무감각이 판치다보니 자신의 허물을 생각하지 않고 '언론보도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는 피해망상에 사로잡히고, 언론을 먼저 탓하는 것이다. 야당의원에게 빰 맞고, 사진기자에게 욕설을 퍼붓는 작태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언론에게 무감각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무감각해져가는 언론을 채찍질 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 곳곳의 부정부패를 언론에 적극 제보하고, 사회의 무감각을 자극해야 한다.
/김재호(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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