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기획취재부장)
미국에서 발화된 금융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를 둘러싼 옹호론과 배척론이 뜨겁게 격돌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신자유주의는 자유 시장을 신봉하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재산권을 중요시하는 이념이다.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구축된 사회에선 시장 경제에 적절히 적응할 수 있는 재능과 감각을 가진 개인이나 국가들이 잘 살 수 있는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한다. 그런 측면에서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진화론을 근저에 깔고 있는 자본주의 이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번성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이같은 이념을 자국에만 적용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세계 각국에 한나씩 하나씩 심어나가는 걸 즐겼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이라는 국제적 금융 시스템을 바탕으로 각국을 순방하며 시장 개방을 요구했고, 이를 통해 자유 무역을 실현해 나갔다.
수십년간 자신들의 생각과 지향점이 최고의 이념이라고 자부해 오던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념의 본향인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파열음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를 기초로 쌓아올린 미국의 자본주의가 경제위기가 가속화 되면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아니, 이젠 체면을 논할 때가 이미 지나 생존의 갈림길에서 초췌한 몰골로 서성이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금융그룹인 씨티, 최대 제조업체인 GM, 거기에 최대 금산 복합체인 GE가 화려했던 잔영을 뒤로 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호주 정상이 국빈방문을 앞두고 서로 상대국가의 언론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한 각기 다른 시각을 보여 외교가를 중심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면서 신자유주의에 맹공을 퍼부어 온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탐욕스런 월가의 자본가와 시장의 자유방임을 무한대로 허용한 조지 부시 정부가 전 지구적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공격하면서 '나는 신자유주의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단언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사망론'이다.
신자유주의에 상당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은 호주 총리와는 상반된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정부의 역할을 가능한 줄이는 게 원칙'이라는 평소의 신념을 다시 강조하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해결한 이후에는 신자유주의를 다시 유지해야 한다는 논지를 편 것으로 전해졌다.
사회적 경제적 대격변은 새로운 시스템과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 낸다. 세계대공황에 따라 경제학에 케인즈 이론이 등장했고, 세계적인 스태그플래이션이 밀어닥치면서 시카고학파의 이론이 등장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생각은 삶에 대한 방식이나 시각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다. 적자생존을 인정하는 신자유주의는 강자들의 논리만을 너무 강조한 경제체제가 아닐까. 적자생존의 법칙은 생태계에 적용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경제체계에까지 들이댄다는 것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장애요인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삶을 전쟁터로 몰아가려는 생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김경모(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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