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기획특집부장)
3월 한 달은 정말로 행복했다. 금융 위기, 경제 침체 속에서 마음 고생으로 짓눌린 가슴이 뻥 뚫리는 카타르시스를 맘껏 즐겼다.
3월초부터 시작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감동은 29일 김연아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2009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정점을 이뤘다.
국민들의 마음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이 WBC 결승전이 치러진 24일 만19세 이상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72.9%가 'WBC 대회가 있어 행복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갤럽은 남자와 연령이 높을수록 행복감이 높았다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WBC대회가 경제 위기로 움츠러든 가장들에게 큰 위안을 준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까지 덧붙였다.
우리 대표팀은 진정 잘 싸웠고, 잘 다듬어진 드라마를 뛰어넘는 숱한 명장면과 감동적인 순간 순간을 연출해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표팀에 병역 특례를 부여하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결승전이 끝난 직후 이에 대한 찬성률은 71%로 조사됐다.
김인식 감독을 비롯 김태균 봉중근 추신수 윤석민 등등, 이들 야구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이 거론되면 다시금 그때 그 순간으로 푹 빠져들 것만 같은 심정이다.
WBC로 달아오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김연아가 세계 빙상계를 제패했다는 소식이 또 다시 국민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출전한 김연아는 사상 최초로 200점을 넘는 화려한 성적으로 세계 피겨 여왕에 등극했다.
스포츠의 힘은 누가 뭐래도 막강하다. 특히 세상을 살아가는 낙이 사라진 상황에 빠질수록 인간의 원초적인 힘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의 마력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다.
기나긴 경제난국이란 터널을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온 국민들에게 2009년 3월이란 세월의 한 토막은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무궁무진한가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언론이 흥분하는 사이 뭔가 미심쩍은 일들이 대형 호재에 묻혀서 지나간다는 느낌이다.
WBC 결승전을 앞둔 시점에 공중파 방송들은 전체 뉴스의 40-50%를 야구 관련 소식에 할애했다. 숱한 사람들이 관심을 쏟고 있고, 주요 뉴스로 처리할 수 있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는 점에는 모두가 동감하지만 그 정도가 문제다.
언론계가 주시해온 모 방송사 문제가 초대형 스포츠 호재가 터진 사이에 기자 구속으로 이어졌고, 나라 살림살이를 좌우할 추가경정예산을 둘러싼 격론이 벌어졌지만 이들 소식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 세상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특정 계층이나 특정 부류를 지향하는 방송이 아닌, 국민과 대중을 위한 방송인 공중파는 뉴스가치를 배분하는데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의무이다.
스포츠가 국민을 우민화시킬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혹여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스포츠계 경사를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사람이 없었나 다시 생각해 본다.
/김경모(기획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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