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진화하는 국악, 유럽을 매료시키다
'석삼년'이라고 말한다. 그냥 삼년도 아니고, 석삼년이다. 우리 조상들은 '3'이란 숫자를 중시했다. 3년이란 세월은 어떤 야심찬 일을 추진하는데 기본적인 단위다. 3년동안 줄곧 노력하면, 분명 새롭게 바뀔 수 있다.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는 올해로 꼭 만 3년이다. 창의적인 젊은 국악인을 발굴하는데 목적을 둔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Korean Music Project 21, 이하 KMP21로 표기).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비교하자면, 대중음악계의 '수퍼스타K'와 같은 젊은 아티스트들의 등용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야심차게 기획한 사업으로, 국악방송이 주관을 하고 있다.
지금 국악계에선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 출신의 젊은 국악인들의 활동이 괄목할 만하다. 그들이 국악의 미래상을 제시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3년이란 세월은, 국악을 변화시켰고, 새롭게 진화시켰다. 국악의 무게 중심을 '젊은 국악'으로 이동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예술과 관련된 많은 사업 중 대표브랜드가 되었다.
지난해 뉴욕공연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어냈던 21세기프로젝트 출신의 젊은 국악인들이 올해는 유럽에 진출을 했다. 공연 제목은 'korea's 21st Century Music : There and Now'.
파리에선 '파리세계문화의 집'에서 공연(10.26-27)을 했다. 이곳은 파리에서 월드뮤직의 메카 역할을 하는 곳. 세계음악계에 명함을 내 밀고 싶은 아티스트들이 통과의례처럼 거치는 곳이다. 런던에선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대영박물관'의 지하 극장에서 공연(10. 30)을 했다.
▲ 편하거나 도발적인 우리음악의 진화
3년 전으로 돌아가자. 당시 젊은 국악인들을 중심으로 해외공연을 한다는 건 일종의 도박이었다. 물론 지난 30여 년 동안 많은 국악공연이 있었고, 젊은 국악인들도 참여를 했다. 그러나 한국음악의 새로운 흐름(뉴 웨이브)을 보여 주자는 목적으로, 젊은 국악인들에게 크게 비중을 둔 해외공연은 KMP21이 공식적으론 최초라 할 수 있다.
이번 유럽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었다. 1부는 그간 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한 중견국악인 4인의 무대였다. 이지영(가야금), 강권순(여창가곡), 김정승(대금), 김웅식(장구)은 진지하게 세련된 연주를 해주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배가 높은 아티스트들이 뒤에 공연하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이번에는 젊은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메인 무대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2부에 등장한 '숨(SU:M)'과 '불세출(不世出)'은 지난 3년간 KMP21을 통해 데뷔한 많은 팀 중에서 가장 유럽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다. '숨'은 2인조 여성그룹이고, '불세출'은 7인조 남성그룹이다. 스물다섯 살 전후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이들은 국악기를 다룸에 있어선 달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음악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숨'은 한국 '밖'에서의 시각으로 작품을 만들어간다면, '불세출'은 그와 반대로 한국 '안'에서의 시각을 중시한다. '숨'은 서양음악에 익숙한 청중들이 감성을 중시하면서, 그들이 따라갈 수 있는 호흡으로 음악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서구의 클래식이나 현대음악에 익숙한 청중들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반면 '불세출'은 음악의 내용이나 형식에서 전통적인 것을 우선시한다. 우리음악의 여러 지역적 특징(경기, 서도, 남도)을 한 작품의 구조 속에 잘 용해시킨다. 아울러 전통적인 시나위가 그렇듯 연주를 하면서 악기별 특성을 잘 발산하는 방식이다. 이런 '불세출'의 매력은 특히 재즈 혹은 월드뮤직으로 단련한 청중들에게 매우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갔다.
▲ 왜 작은 도시 '리버플'의 무대를 원하는가
공연 전날, 이들은 런던대학(SOAS)의 렉처 콘서트에 참여했다. 엄혜경(민족음악학자, 영국 리버플대학 종신교수)이 강의를 했고, 이들이 연주를 했다. 유럽에서 한국전통음악을 알리는데 선두적인 역할을 해온 엄혜경교수도 이들의 연주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엄혜경교수가 살고 있는 리버플은 '비틀즈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은 'EU(유럽연합)의 문화 중심도시'로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KMP21의 해외공연은 뉴욕, 파리, 런던을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다. KMP21의 다음 기착지는 동서양의 주요도시가 아닌 바로 리버플이었다. 그들은 작지만 알찬 곳에서, 진정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공유하는 무대를 원했다.
나는 영국의 리버플을 떠올리며, 한국의 전주를 생각했다. 아주 큰 도시는 아니지만,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너무도 소중한 곳! 누구든 언젠가 꼭 가고 싶은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리버플에서 공연을 원하듯, 언젠가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전주를 포함한 전라북도에서 공연을 원하는 때가 와야 한다.
▲ 전주, '소리의 고향'으로 기억하게 하라
석삼년이 바뀔 수 있다. 국악이 그간 연배가 높은 세대들에게 집중되었다가 젊은 세대로 이동하면서 균형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듯이, 만약 우리나라의 문화적 지원과 혜택이 중앙에 집중되고 있다면 반성할 일이다. 더불어 세계의 여러 작은 지역이 훌륭하게 존재하는 방식은 결국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자원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전라북도에서 더욱더 전통문화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인 지원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세상에 남는 건, '문화'지 않는가!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문화'지 않는가!
앞으로 3년 후를 생각한다. 석삼년 후, 한국음악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더욱 풍성한 활동이 펼쳐질 것이다. 그때 전라북도의 문화는 어떨까? 리버플을 세계인들이 '비틀즈의 고향'로 기억하고,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기대하는 것처럼, 전주와 전라북도도 세계인들에게 '소리의 고향'으로 기억되기 시작했으면 좋겠다.
/윤중강(음악평론가,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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