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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우리도 학(鶴)몰이나 떠날까 - 허소라

허소라(시인·군산대 명예교수)

 

내일 모레면 6.25, 6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6.25의 역사적 배경과 그 본질에 대해선 여러 증언과 자료들을 통해 규명되어 왔지만 그 궁극적인 해법에 대해선 정치인이나, 야전군 사령관이 보는 안목과 종교인이나 문인들이 보는 안목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선 후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남과 북 모두를 높낮이 없는 민족 공동체로서, 나아가 인간생명의 존엄성 위에서 포괄적으로 해법을 모색하려는 것이다.

 

1950년 9월, 6.25의 최대 고비였던 다부동 전투의 피비린내나는 현장을 종군하고 돌아와 쓴 조지훈의 시「다부원(多富院)에서」의 몇 구절을 보자

 

"일찍이 한 하늘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중략)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생명의 소중함을, 적이든 아군이든 같은 등가물로 보려는 휴머니즘이 서려 있다. 비단 시 뿐 아니라 소설 쪽에서도 이데올로기 극복과 동질성 회복을 위한 유수한 작품들이 창작되어졌다. 이 중 황순원의「학」 (1953.5)은 휴전 직전에 발표된 것이어서 더욱 주목을 끌었다.

 

주인공 성삼이와 덕재는 한 마을의 단짝친구였다. 38접경 이북마을에서 농민동맹 부위원장을 지낸 덕재가 남쪽 치안대에 잡혀왔는데 마침 성삼이가 그를 청단까지 호송하게 되었다. 호송도중 덕재가 옛날에 같이 놀려주던 꼬맹이와 결혼한 사실, 그리고 혹부리 영감네의 밤을 훔치러 갔던 일 등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한다. 마침 옛날에 함께 학을 잡은 일이 있는 38선 완충지대에 이르자 "얘, 우리 전처럼 학 사냥이나 한번 하고 가자"라면서 덕재의 포승줄을 풀어준다. 이 때 덕재는 성삼이가 총으로 쏘아 죽이려나보다 하고 멍하니 서 있는데 "어이 왜 맹추같이 게 섰는게야, 어서 학이나 몰아 오너라" 성삼이의 재촉에 순간 무엇을 깨달은 듯 덕재가 잡풀 사이로 날쌔게 기어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전란과 남북 분단의 냉혹한 현실보다 우정, 즉 인간애가 더욱 우월함을 보여준 작품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남과 북의 민족 다중들이 주체적으로, 선택적으로 남과 북을 선택 했다라기 보다 어느날 갑자기 38선이 그어지고 그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운명적으로 나뉘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어느쪽이 더 자유롭고 먹이가 풍부한가는 따로 남는다.

 

요즈음 남아공 월드컵 축구에서 북한 대표팀 공격수 정대세의 '눈물'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알려진 바와 같이 재일동포 3세로 한국 국적을 지닌 채 북한 선수로 뛰고 있다, 그동안 각종 세계대회에서 수없이 남북이 마주치고 짧게나마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만 이처럼 하염없는 눈물을 보인 것은 처음으로, 그 눈물샘의 근원이 어디이며 진의가 무엇인지 우리 언론이 집요하게 접근해왔다.

 

특히 부라질 대표와의 게임에 앞서 북한 국가가 나오자 줄줄 눈물을 쏟아내던 연유를 묻자 그는 주저없이 " 세계 1위의 브라질 대표와 당당히 맞선다고 생각하니 기뻐서 눈물이 나왔다"라고 대답했다. 흔히 쓰는 '-위대한'이나 '통일'이란 수사가 없다라는 데에도 정대세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족했다. 그는 눈이 가늘고 다브진 체격의 강한 인상과는 달리 "정말 한국은 경제든 스포츠든 어디든 세계에 통하는 사고방식과 힘을 갖추고 있는 나라구나 하는 존경의 염(念)을 갖고 있다" 라며 분위기를 추수릴 줄도 아는 감각까지 지니고 있었다. 한편 그의 눈물에 대해 한 도쿄 특파원은 '북에서 죽어간 재일동포들이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면서 그의 눈물에 대한 지나친 감동을 경계하기도 했다.

 

사람이 하루종일 쏟아낸 눈물이라 해도 그 염도(鹽度)에 있어선 라면 1회분 스프에도 못미친다. 그러나 그 순수함에 있어선 비교할 대상이 없다 . 정대세의 눈물도 격상격하를 떠나 있는 그대로 느끼면 되지않을까 싶다.

 

-어서 우리도 앞서의 덕재와 성삼이처럼 학 몰이나 떠났으면 좋겠다.

 

/허소라(시인·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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