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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인생의 세 고비

송현섭(재경 전라북도민회 회장)

사람이 살아가는데 세 번의 고비가 있다고 한다.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 말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꼭 안 믿는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것 같다. 삶이 예측가능한 게 아니고, 내 삶을 지배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믿는 것도, 미신이라고 매도하지도 않는다.

 

살아가다보면 누구에게나 고비는 있다. 어느 정도까지의 위기가 고비인지, 그것이 옛말에서 말하는 그 고비인지, 또 인생에 유의미한 고비가 꼭 세 번이어야 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 내게도 세 번 정도의 고비 혹은 위기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경우 고비는 생명의 위기였다. 모두 물과 관련이 있다. 칭찬받을 일이기도 했다. 물에 빠진 생명을 구해줬으니까. 하지만 내 수영실력이 동네 개천의 개헤엄 수준이란 걸 생각하면, 용기는 가상했지만 생명의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고향 칠보에서의 일. 물살 센 동진강을 사이에 둔 송산마을과 시기마을은 얼기설기 엮은 나무다리로 연결돼 있었다. 내가 다리 옆 둑에 있는데, 나무다리 위로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가 굴렁쇠를 굴리며 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굴렁쇠가 다리의 나무 사이에 걸리는 것 같더니 아이가 물 속으로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뛰어들어가 아이를 끄집어냈다. 50m 정도 떠내려온 아이는 물은 좀 먹었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 괜찮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집에 가라 하니 일어나서 갔다. 나도 경황이 없어서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 후 그 아이를 만나고 싶어 계속 수소문했지만,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는 대학생 시절의 여름. 한강으로 놀러갔다. 당시 서울시민의 휴식처는 남산과 한강인도교 부근의 백사장뿐이었다. 친구와 보트에 올랐다. 부근에서 여자 두 명이 보트를 타고 있었는데, 그 배가 한 쪽으로 기울더니 한 명이 물에 빠졌다. 물에 뛰어들어 구해냈다. 내가 구해준 젊은 여성은 생명의 은인에게 술 한잔 대접하겠다며, 종로3가의 술집에 있으니 그리 오라고 했다. 나도 생명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매우 흐뭇했지만, 갈 수는 없었다. 당시 종3이 뭐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세 번째는 역시 대학시절, 안양에 사는 친구를 찾아 버스를 탔다. 안양 부근에서 버스가 둑길에서 냇물로 굴렀다. 세 번 정도 구른 것 같다. 버스 안으로 물이 반쯤 차올랐다. 30여명 승객이 모두 부상을 입었다. 나는 긁힌 상처 하나 없이 말짱했다. 기적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상황. 다친 승객들을 한 사람씩 업고 물 밖으로 옮겼다.

 

며칠 전 신기한 경험을 했다. 캐나다 교포라는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와 친척 되는 어머니가 만나보라고 말씀하셔서 전화했노라고 했다. 약속을 하고 커피숍에서 기다리는데, 순간적으로 '이 사람이 혹시 물에서 구해준 그 아이는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든 생각,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그 사람에게 "어렸을 때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동생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 앞뒤를 맞춰보니 내가 구해준 그 아이가 맞았다. 지금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단다.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진 것까지만 생각나고, 그 뒤의 일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 때 상황을 설명해주니, 생명의 은인을 이제야 뵙게 됐다며 감격했다. 며칠 뒤 가족을 데리고 인사를 왔다. 만나고 싶어하던 사람을 57년 지난 뒤에 만난 것. 기적같은 만남이 매우 기뻤다.(나이는 61세. 이름은 한종석. 정말 반가워 부둥켜 안고 꿈만 같았다.)

 

살아오면서 좌절도 있었고, 여러 고비를 겪기도 했다. 죽음과 관련된 고비도 겪었다. 이젠 죽을 고비는 다 넘겼나 하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물'과 관련돼 잘못 되는 일은 없겠지 생각하며 웃음 짓기도 한다. 이 나이가 되면 잔병도 없어진다니,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 과욕인가?

 

/송현섭(재경 전라북도민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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