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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보국탑의 부활

최연성(군산대 교수)

 

1935년 모리라는 일본인 지주가 군산 월명산 자락에 있는 자신의 정원에 천황에 대한 충성의 징표로 5층 석탑을 세운다. 그것이 보국탑(報國塔)이다. 모리는 노일전쟁 당시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만주에서 장사를 해 돈을 모았으며, 그 후 군산으로 와서 농장과 정미소를 운영하며 수탈과 착취를 일삼았던 자다. 광복 50주년인 1995년 민족정기를 세우며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이 탑은 파괴되어 시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이 탑이 최근 그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물론 파괴되었던 터라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학계에서는 일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식민지로 삼았지만 근대화에 이바지한 공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듯하다. 언뜻 보면 그럴싸하지만 이 논리는 압제를 정당화하고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풍조가 도시재생이나 지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까지 스며들고 있어 우려스럽다.

 

군산이 대표적이다. 군산에서는 일제가 남기고 간 낡은 건축물을 보수하는 사업이 한창이다. 근대문화도시를 조성한다며 낡은 은행건물이며 창고를 복원하고 있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거행되었으며, 강점기에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전이 열리기도 했다. 근대문화유산 투어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런 유산을 배경으로 영화들이 촬영되고, 근대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세미나가 이어졌다. 근대문화 해설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시립박물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도 상당수의 유물이 근대라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보국탑도 시립박물관 야외에 전시된다.

 

심하게 말하자면 일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군산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광복된 지 어언 66년, 글로벌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웃인 일본을 과거의 감정으로 대하거나 그 잔재를 애써 지울 필요는 없지만 그것을 미화하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은행의 복원도 좋지만 그 은행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우리의 재산이 빼돌려 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도 좋지만 이 항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려줘야 한다.

 

근대문화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일은 환영할만하나, 그것이 한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형성하거나 나아가 선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제 36년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치욕이며, 일제문화는 우리의 치부다. 철면피가 아니고서야 어찌 치부를 드러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단 말인가.

 

우리나라가 근대국가가 아니듯이 군산은 물론 근대도시가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시민들이 군산을 마치 일제가 갑자기 건설한 신도시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최근 나온 '群山市史'에 보면 "개항 당시의 군산은 약 150여 채의 한옥이 산재할 뿐"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정말 그럴까? 조선시대 인구센서스에 해당하는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의하면 18세기말 군산에는 4,446호 14,649명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시사조차 식민사관에 의하여 날조된 거짓말을 그대로 싣고 있으니 딱하기 그지없다. 군산이 근대문화로 재미 좀 보려거든 역사의식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 최연성(군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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