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홍 (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수 일전 얼굴이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젊은 청년이 겸연쩍은 듯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군인이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각 잡힌 자세와 "~까?", "~다."로 마무리되는 말투는 대한민국 군인의 전형적 모습이었다. 외박을 나와 그 동안 먹고 싶어도 못 먹었던, 일명 사제 음식들을 너무 과하게 먹은 탓인지 장염에 걸린 듯 했다. 구토와 설사가 심하여 탈수 증상이 겹쳐 있었고 열도 있었기에 수 일 간 입원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입원이 어려우니 주사와 약을 처방받고 가겠다고 했다. 인근 경찰서에서 의경으로 근무 중이며 입대한지 얼마 안 되는 그야말로 서열 꼴찌의 신병이라 입원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내무반 생활에서는 증상이 호전되기 어렵고, 이 더위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근무를 한다면 상태가 악화될 것이 분명하기에 부모님을 설득하여 부대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입원을 하도록 하였다.
신참 의경을 보며 십 수 년 전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던 추억이 떠올랐다. 서른이 넘은 나이, 대부분 처자식도 있는 소위 머리통 굵은 전국의 선생님들을 모아놓은 군의학교에서 과연 제대로 된 훈련이 이루어질까? "8주 훈련기간은 뭐 대충 지나가겠지"하는 나의 생각은 며칠 못 가서 바뀌고 말았다. 머리를 깎고 군복과 군화를 착용하니 근엄한 선생님의 모습은 간 데 없고, 군부대 위병소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의 군인 아저씨들이 조교들 앞에서 목이 터져라 구령을 외치며 뒹굴고 있었다. 그 무엇이 이처럼 나이도 많고 잘나게 살아온 이들 조차도 군기가 바짝 든 그 신병처럼 영하의 날씨에 속옷만 입고 연병장을 달려도 불평 없이 따를 수 있게 하였을까? 다름 아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의 규율 때문이라 생각한다.
6년 전 GP의 총기 난사 사건, 최근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등 우리 군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군 내부의 폭력과 상명하복을 강조하는 규율의 부당성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공감을 하는 부분도 있으나 무조건 가혹 행위를 없앤다는 명목으로 체벌이나 구타를 없애고 선임병의 횡포를 막는다고 간부가 아닌 선임들에게 명령을 할 수 없게 한다면 대부분이 외아들로 부모의 끔직한 사랑을 받고 자라온 다양한 개성의 젊은이들을 2년 여 시간 동안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 교육의 개선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중·고 학교생활에서 조직사회의 규범과 역할 수행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교육과, 단체 생활을 통한 이타심과 협동심을 길러야 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부모들의 원성과 질책이 두려워 학생들 지도에 소극적이며, 거침없는 아이들의 반항이 두려워 쓴 소리에 인색한 선생님들을 탓하기 전에, 학교를 학원에 갈 때까지 시간 때우는 장소처럼 만들어 버린 정책 당국에 지적을 보낸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려면 군대는 필수적이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선풍적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모 가수는 병역 면제를 위해 약속을 저버리고 미국 국적을 유지한 괘씸죄로 팬들에게 조차 외면당한 채 입국 금지라는 극형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 관료 임명에 따른 청문회, 지역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 단체장을 뽑는 선거 역시 후보자들의 병역이 최대의 관심사이며 병역 면제 의혹으로 인하여 중도 탈락하게 되는 후보자들도 있으니 대한민국 국민의 병역에 대한 생각에는 에누리가 없음이 분명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유행어가 있듯이 반드시 가야 된다면 긍정적이고 자기 개발의 시간으로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 기대감으로 갈 수 있도록, 부모의 입장에서는 하나 밖에 없는 자식을 보내며 마음 편히 보낼 수 있도록, 군대(軍隊)라는 다소 딱딱하고 걱정스러운 이미지 보다 학식과 교양을 쌓고 정신수양을 할 수 있는, 마치 군에서 운영하는 대학이라는 의미의 군대(軍大)에 입학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 군 문화에 대한 개선을 바란다. 대한민국에서 군필(軍畢)이란, 이력서 한 칸을 차지하는 의미 이상이니까.
/ 이재홍 (전주 드림솔병원 내과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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