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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경제학이 푸는 '공짜'의 비밀

조승규(상가포르 국립대교수)

 

필자의 누이는 내가 아는 가장 검약하고 알뜰한 사람 중 한 분이신데, 가끔 하나 사면 하나 공짜라고 해서 샀다며 평소 같으면 사지 않았을 꽃이나 화분을 사들고 오신다. 독자분들도 간혹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가 갈비를 시키면 냉면을 공짜로 준다는 유혹에 두 배의 저녁값을 지불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공짜라면 이렇게 쉽게 흥분하고 변별력을 잃는 것일까?

 

듀크대학의 행태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고급 스위스산 초콜렛 A와 평범한 미국산 초콜렛 B에 각각 개당 15센트와 1센트의 싼 가격을 매겨두고 243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구매실험을 했는데, 학생들 중 대다수가 A를 선택한다. 초콜렛의 품질을 고려할 때 놀라운 결과가 아니다. 그런데 초콜렛의 가격을 각각 1센트씩 인하한 후 실시한 다른 실험에서는 반대로 대다수가 B를 선택하고 있다. 바로 '공짜'의 마력이다. A, B 함께 같은 가격만큼 인하되었고 따라서 여전히 두 초콜렛의 가격차이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이성적 소비자라면 구매비율에 큰 차이가 없어야 맞다. 합리적 인간을 가정하는 표준경제학은 그래서 이 공짜의 마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반면 이론과 실제의 괴리에 대한 다양한 실험적연구를 통해 새로 등장한 신학문으로서의 행태경제학은, 비이성 또는 비합리성 또한 나름의 한 일관된 인간행동체계로 규정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행태경제학은 '공짜의 비밀'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물건을 구입할 때 우리는 지불한 가격에 비해 물건의 가치가 정말 좋은 것인지 또는 손해보면서 사는 건 아닌지 위 아래로 양방향의 셈을 하게 되는데, 공짜일 경우 손해에 대한 심리적 우려에서 완전히 자유로와짐으로써 갑자기 구매욕구가 물밀듯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공짜'는 단순히 싼 가격 이상의 전혀 다른 차원의 가격세계로서, 일반가격체계에서와는 다른 새로운 정신적 셈의 경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공짜의 마력이 현실에 주는 유용성은 기대 이상이다. 공짜의 마력에 이성을 잃어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하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구매충동에 휘말리게 되는 건 비단 저 위 필자의 누이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얘기다. 세계 최대의 전자유통업체 아마존은 일정액 이상을 주문할 경우 무료배송을 약속함으로써 획기적 판매증가를 기록하였다. 애초 책 한 두 권을 주문하려고 계획했던 소비자들이 무료배송의 유혹에 휘말려 대여섯 권의 책을 한꺼번에 주문하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독 프랑스지점에서는 거의 공짜수준인 건당 250원으로 대폭 배송료를 인하하였지만 공짜는 아니었던 까닭에 다른 지점에서와 같은 획기적 판매증가가 목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미국의 인터넷서비스업체 AOL은 시간 당 요금제를 폐기하고 대신 월 일정액에 무제한 인터넷사용으로 요금체계를 바꾸자 그 첫 달에 두 배 이상의 고객증가를 경험하였다고 보고하고 있다.

 

'공짜의 마력'은 마케팅이나 판촉의 수단 뿐 아니라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도 용이하게 쓰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댄 애리얼리는 그의 저서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전기자동차를 널리 보급하고 싶으면 차량등록세나 검진세를 할인해주는 수준을 넘어 아예 면제할 것을 권하고 있다. 한편, 필자는 지난 여름 초등학생 아들녀석에게 삽십분 책 읽을 때마다 삽십분 게임을 허용해주던 기존 룰을 바꿔 하루 두 시간 이상 책을 읽으면 그 날은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해도 좋다고 약속해주었다. 아들녀석은 기꺼이 하루 두 시간 책을 읽었고 다른 놀거리로 분주했던 녀석이 정작 게임에 보낸 시간은 하루 한 시간을 넘지 못했다. 아들은 아들대로 만족했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흐뭇해하며 지금 또 다른 공짜의 마술을 궁리하고 있는 중이다.

 

/ 조승규(상가포르 국립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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