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희 (인천광역시도시개발공사 사장)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며 내 고향 전북의 가을 정경을 떠올려본다. 너른 들녘에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벼이삭, 달빛 아래 소금처럼 하얗게 물들어 전율을 느끼게 하는 학원농장의 메밀꽃, 그리고 상사병에 걸려 빨갛게 달아오른 듯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선운사의 꽃무릇 등등,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황금빛 들녘의 넉넉함이 흥겨운 풍년가 가락에 실려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상쾌한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감촉도 기억에 생생하다.
하지만 현실의 고향은 노랫말과도 같이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고향의 친구들은 다들 타향으로 떠나버렸고, 따스한 어머니 품 같던 고향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쓸쓸함과 허전함이다. 대부분 나고 자란 고향에 살고 있는 대신 삶을 위해 도시로 떠나버려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와도 아는 얼굴 만나기가 쉽지 않아 남은 정이라고는 기억 속에 아련함뿐이어서 고향을 무정하다 노래했을 것이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공직에 몸담았던 필자에게 있어 국토균형발전이라는 화두는 잠시도 끈을 놓을 수 없는 어렵고도 중요한 과제였다. 그 동안 수많은 정책 수립과 집행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지만 수도권과 지방, 도시와 농촌, 대도시와 중소도시간 불균형이 해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뒤쳐져 상대적으로 낙후된 내 고향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지역간 불균형은 이제 양극화라는 말이 알맞을 지경으로 상황이 심각해졌으나 안타깝게도 국토균형발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오히려 작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 인구가 절반에 이르게 되자 수도권의 이익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그만큼 커져버린 것이다. 머지않아 국토불균형 문제를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하게 된다.
하지만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명제는 단순히 수도권과 지방이 골고루 잘살았으면 좋겠다는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다. 좁은 국토이니만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넓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정부 들어서면서 광역경제권과 초광역경제권 중심의 국토정책이 추진되고 있으나 그 성과는 체감하기 힘들고, 혁신도시 건설 등 과거에 추진되던 정책은 추동력을 잃어 지지부진한 것 같다. 지방 분권과 분산, 분업과 같은 문제는 어려운 과제인 만큼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작은 성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을 상호 대립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각자의 역할과 기능을 적절히 나누어 수행하면서 지방마다의 특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 내 고향 전북 역시 지역적 특성을 살려 나가야 한다. 전통적으로 강점이 있는 농업분야를 기반으로 식품산업의 중심지이자 생명과학산업의 선도지역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새만금의 광활한 토지를 활용하여 신·재생 에너지, 물류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고, 친환경 관광산업을 육성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고향의 무정함을 노래하는 대신 새 기운으로 활기차고 인심 넉넉하여 누구나 찾고 싶은 고향이 되는 날을 꿈꾸어 본다. /이춘희 (인천광역시도시개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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