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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싶다

이정상 도로교통공단 전북지부 교육홍보부장

386세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젓가락에 두들겨 맞아 귀떨어진 탁자와 찌그러진 주전자, 한끼 식사를 대신하고 남을 푸짐한 인심이 묻어나는 대포집의 추억을 한자락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막걸리 심부름을 해보았던 세대라면 또 하나의 추억이 있다. 막걸리를 받아 돌아오는 길에 배고픔, 호기심… 슬며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한모금 마셔본다. 이러기를 여러 차례, 다리는 휘청거리고 표 나게 줄어든 막걸리 주전자에 물을 타던 것이 막걸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걸쭉한 막걸리 한잔 걸치고 싶다// 어젯밤 갈 길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본/ 사람에게만/ 보였던 눈송이 때문만은 아니다// 문득 혼자라고 느낄 때/ 좀체로 삶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사람과 사람들 사이 내가/ 한 사발의 막걸리로 놓여져/ 오도마니/ 훈훈한 마음이 되고 싶다… 입가에 묻은 허연 막걸리 자국 훔치지 않아도/ 아름다운 그런 편안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싶다” -윤성택 ‘막걸리 한잔’-

 

술 한잔 하자는 말에 소주나 맥주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예로부터 내려온 우리의 대표적인 술은 역시 막걸리이다. 바쁜 농사철 농부들의 땀을 식혀주던 술이 막걸리이며 도시 뒷골목 허름한 술집에서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와 서민의 애환을 함께한 술도 막걸리이다.

 

삶이 외롭고 팍팍하다고 느낄 때 마음 편안한 사람들과 둘러앉아 주거니 받거니 어우렁더우렁 양재기 잔에 그득 따라 새끼손가락으로 휘휘 저어 한잔 걸치는 막걸리는 안주가 없어도 좋고 안주가 있으면 더 좋은 편하고 겸손한 술이다.

 

한동안 서민, 나이 많은 노친네들이나 마시는 술로 외면당해 왔던 막걸리가 소주와 더불어 오히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술이 되었다. 막걸리는 식이섬유와 몸에 유익한 유산균 덩어리라는 연구결과도 이런 막걸리 열풍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막걸리에는 일반 식음료의 100배 이상의 식이섬유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막걸리를 마시면 변비환자도 다음날 화장실에 직행하게 되고, 때깔 좋은 황금색 변을 밀어내기 한판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막걸리 한병에 요구르트 120병과 맞먹는 유산균이 있으며, 이런 유산균과 효모들이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유발하는 유해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알코올 성분만 제하면 영양제를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술을 약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막걸리 열풍과 함께 우리 전주의 막걸리는 관광코스의 하나로 자리 잡을 정도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런데 외지 사람들의 전주 막걸리에 대한 이미지는 막걸리에 있지 않고, 막걸리에 따라 나오는 푸짐한 안주에 있다. 정작 중요한 막걸리는 안주 가지 수에 가려져 있는 것이다. 몇 종류 안되는 소주를 주문할 때는 종류를 확인하면서도 왜 막걸리는 주인이 선택한 것만 마셔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우리 지역에도 전국의 유명 막걸리보다 더 낳은 술이 있을 텐데, 지역의 명주에 대한 개발과 홍보를 등한시 하다보면 결국 대기업 등 외지의 막걸리가 우리의 막걸리 골목을 점령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리고 한 주전자에 1만원 하던 막걸리 값이 어느새 2만원이 보편화되어 가고 있어 이제 막걸리도 서민의 술이 아니라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물가가 올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대량으로 공급되는 특색이 없는 안주의 가지 수를 줄이고 술값을 내리는 것은 어떨까? 다른 술에 비해 건강에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적은 막걸리를 많은 사람이 즐기고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방안이 없는지 함께 생각해야 할 때이다.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 전주역 앞 어느 막걸리집의 낙서가 나를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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