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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LP판 모은 민병하씨】음반 구하러 태평양 건넌 못말리는 수집광

발품으로 모은 음반 3000여장 소장 / 2001년 화재로 1000장 잃은 아픔도 / 음악감상실 열어 시민들과 공유 희망

▲ 민병하씨가 45년 동안 모아온 LP판들을 들어 보이며 수집 당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있다.

평범해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됐다. 뭘 하나 만들어 팔려 해도 기발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잃고 만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평소와 다른 나'를 추구하는 사람들. 작고 사소한 취미, 나만의 공간 등으로 행복을 만끽하는 이들의 행복 비결을 들춰본다. 전북일보 문화전문 시민기자단이 펼치는'이색지대'를 통해 만나보자.

 

△45년간 3000장 모아

 

아무튼 단단히 빠졌다. 갖고 싶은 앨범은 산 넘고 바다 건너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고야 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민병하(60·前 원광대 홍보팀장)씨의 음반 수집 사랑은 급기야 태평양도 건너게 만들었다. 1986년 미국까지 가서 구입한 앨범들을 아직도 알뜰살뜰하게 살핀다.

 

45년 째 LP음반을 수집해온 그의 이야기는 곧 LP음반의 산역사이기도 하다. "익산 서울 악기라고 있었어요. 전주에는 백번 악기사, 전화번호가 100번이었거든요. 그때 빽판을 사기 위해 발품을 많이 팔았죠."

 

비록 중학생의 적은 용돈으로는 해적판 밖에는 구입할 수 없었지만, 재즈·칸쵸네·샹송 등의 음악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군산에 있는 미군 부대에 직접 가면 싸게 살 수 있었어요. 운이 좋으면 원판을 살 때도 있었죠."

 

현재 3000여 장의 앨범을 소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지난 2001년 화재로 1000장이 넘는 음반을 잃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여전히 속이 쓰리다.

 

지금도 가까운 친구들에게 LP음반을 녹음해서 선물한다. 직접 들어보니 음반 상태가 처음 그대로 깨끗하다. 이유는 민병하씨 외에는 아무도 음반에 손을 댈 수 없다.

 

1970년에 구입한 '미란츠900'은 당시 앰프 한 개 가격이 쌀 30가마를 주고 샀다 한다. 지금도 오디오 중에 애장품이다. 민씨가 소장한 앨범 중 가장 아끼는 앨범은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로 시카고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미국에서도 구입하기 힘든 희귀 앨범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음반으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래서 "너무 깨끗하고 기계적인 CD 음악은 안 듣는다"면서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놓고 카트리지를 살포시 놓으면 지글지글 들려오는 잡음이 오히려 아련한 맛이 있다"고 했다.

 

△글렌 밀러 음반 '최고'

 

그는 시카고 벼룩시장에서 얻은 앨범'Glenn Miller Today'를 놓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글렌 밀러는 미국 빅밴드 중 '베니 굿맨'과 함께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전설적인 트럼본 연주자로 그의 히트곡을 모은 음반. 1960년대 녹음된 것으로 글렌 밀러 사후 친구인 '레이 맥킨리'가 지휘한 곡들로 구성돼 있다. 'In the mood', 'Moonlight serenade' 등 12곡이 수록 돼 있다. 시카고 벼룩시장을 구석구석 찾아 손에 넣기까지 고생이 많았다. 전북에서 유일하게 이 앨범을 소장하고 있다. 흑인 피아노 연주자 겸 지휘자인 Duke Ellington 악단의 초창기 재즈인 딕시랜드 스타일을 연주한 음반이다. 역시 시카고 벼룩시장에서 건진 보물이다.

 

로스엔젤레스에서 구입한 앨범'sing sing sing'은 친숙한 클라리넷 연주자인 베니 굿맨 악단의 히트곡 모음집 'Benny Goodman Today'로 1960년대 유행한 라틴 재즈 스타일인 보사노바, 삼바를 흑인색소폰 연주자 콜맨 호킨스 밴드가 연주한 'Coleman Hawkins'. 1940~50년대 사랑받았던 'Artie Shaw' , 흑인 피아니스트 'Count Basie' 는 1991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건진 수확이다.

 

당시 팝음악 앨범을 구하기 위해서는 미군 부대 주변을 배회하는 방법이 유일했다. 1972년 12월에 군산 미군부대에서 구한 'Big Band Hits'는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들의 히트곡들이 수록 돼 있다. 청년 시절 구입한 몇 안 되는 귀한 앨범이라 지금도 가장 아끼고 있다.

 

그 때 그 시절, 지역에서는 전주 백번 악기사가 유명했다. 서울에서는 황학동이 악기 구입 창구가 됐다.

 

'유주용, 모니카유 앨범'은 1970년대 '부모'라는 곡으로 인기를 모았던 유주용씨의 데뷔 앨범. 유씨는 독일계 혼혈인으로 사진속의 재즈싱어 모니카 유와는 남매지간이며, 클라리넷을 들고 있는 당시 한국 재즈계의 거장인 엄토미씨의 조카다. 엄씨는 영화배우 엄앵란씨의 작은 아버지이기도 하다. 1969년 서울에서 구입한 앨범엔 'My Blue Heaven','Hello Dolly' 등이 수록돼 있으며, 전체 분위기가 재즈 스타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 '이봉조 색소폰 연주집'은 1967년 익산역 사거지에 위치했던 '서울악기점'에서 구입했다. 당시 가격은 200원이었다.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마음이 강박해졌지요. 꿈이 있다면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에서 음악 감상실을 열어서 시민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겁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힐링해보는 시간은 어떨까요." 김진아 문화전문 시민기자(익산문화재단 경영기획팀장)

 

△김진아 익산문화재단 경영기획팀장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석사를 거쳐 KBS 전주방송총국 작가, CBS 전북방송 PD를 지냈다.

 

▲ 민병하씨가 모은 LP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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