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첫인상부터 예상과 달랐다. 중국대학생들의 반응은 진지했다, 무겁기까지 했다. 중국 학생 150여 명이 강연장에 참석했다. 강연 후 한국문학에 대해 질의를 하는 학생도 많았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누구인가. 한국에 끼친 프랑스문학의 영향은 어떤 것인가. 시와 음악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등등. 본질적인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저녁 시간에 진행된 시낭송회 역시 1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했다.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가 시를 통해 만나는 순간이었다. 호기심 수준을 넘어선 관심이었다. 소통과 관련한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켜 버렸다. 중국학생들에게서 또 다른 순정성이 전해져 왔다.
이튿날 오전 대학원생 60여 명과 한국 현대시에 대한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여기서 필자는 '한국현대시와 도깨비'라는 제목으로 짧은 발표를 했다.
한국인들은 모두 도깨비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인만의 특성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적인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성격 중의 하나다.
한국 사람이 지니고 있는 비약적이고 돌발적이며 진취적인 기질은 21세기 비약적인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도깨비는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역경이라도 극복하는 힘을 가진 존재가 도깨비라는 것이 내가 발표한 강연의 요지였다.
인간이 되고자 하면서도 인간 세계의 잘못을 징벌하는 것이 한국의 도깨비다.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수없이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기록들 중에도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우리는 그동안 서양의 신화나 전설을 훌륭하다고 말하면서 동양의 그것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의문을 제기한 나라가 한국이다. 그 결과 한국은 고구려인들이 축구를 하고 신라인들이 전자산업을 일으키고 백제인들이 자동차를 만드는 힘이 하나로 합쳐져 오늘날 세계 첨단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 동양적인 토속문화의 우수성을 입증해 낸 것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눈으로 보자면 정상을 일탈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바로 한국인들이 지닌 창의적 발상과 사고의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불가사의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한국인들의 모습도 이런 특징의 발동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음악계를 놀라게 한 싸이의 음악은 말도깨비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는 추신수 선수가 휘두르는 방망이가 도깨비 방망이이고, 세계스케이트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 선수가 바로 아름다운 도깨비다.
도깨비란 어떤 존재인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 속의 존재다. 가상과 현실을 매개한 중간적 존재들이다. 도깨비는 꿈을 꾸는 존재들이고 현실을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표출되지 않은 에너지다. 서양인들은 물론 중국인들도 한국인을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중국인이 보기에 한국인들은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고대인들이 과거에서 뛰쳐나와 한국의 드라마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독성은 매우 강하다. 한 번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나면 다른 드라마가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필자는 강연의 마지막을 요약했다. 한국인의 특성은 한 문장으로 집약된다. "한국인은 도깨비이고 도깨비는 한국인이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필자의 강연을 듣고 있던 중국의 학생들 중 한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이제야 한국인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지만 최소한 그들과 인간적 소통의 계기는 만들어 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시낭독회에서 한국어가 매우 아름답고 음악적으로 들렸다는 학생도 있었다.
최근 일어나는 한류의 붐도 이런 기본적인 정서적 이해를 공유할 때 지속 가능한 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중국대학생들의 진지한 경청의 자세였다. 중국의 미래가 아주 밝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총리가 앞장서서 역사 왜곡 발언을 하는 등 막다른 길을 향하고 있는 일본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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