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연주자 가족 음악회 / 전문가 불러모은 산골 연주회
피아니스트 박창수는 2002년부터 서울 연희동 집 거실에서 '하우스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들은 2만원을 내고 다채로운 음악가들과 불과 1~2m에 앉아 공연을 즐긴다. 오스트리아 빈을 대표하는 거장 외르크 데무스부터 피아니스트 김선욱까지 출연료가 적어도 크고 작은 스타들이 이곳을 찾았고, 이 공연을 녹음한 실황음반 100종이 나왔다. 연주자들은 으리으리한 콘서트홀보다 집 거실에서 마룻바닥을 울리는 악기의 진동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음악 감상의 매력이라고 믿었고, 관객들은 이 작은 무대 바닥에 방석을 깔고 주저앉아 음악을 듣는 진귀한 체험을 했다.
2008년 12월 최정미씨(45)는 아이들과 특별한 연말 추억을 만들고 싶었던 가족 음악회를 제안했다.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열리는 하우스 콘서트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모임에 가깝다. 최씨는 아들 곽진우와 딸 곽수영, 이웃 친구인 한영훈, 김은서, 차정환을 집으로 초대해 가족들과 함께 열고 있다. 다른 학부모들도 응원도 보태졌다.
하우스 콘서트의 가장 큰 수확은 아이들이 악기를 더 열심히 배우고 익히게 됐다는 것. 실제로 재혁이와 진우는 '전북어린이교향악단'에서 베이스 연주자로 활약 중일 만큼 열의가 뜨겁다.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토론하면서 콘서트를 기획해나가고 있다. 아이들은 지난 음악회 초대장에 "음악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는지, 언젠가 우리 스스로 깨닫는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애정과 미소로 지켜봐 주세요."라고 적어 부모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피아노, 클라리넷, 오카리나, 기타, 바이올린, 플루트, 더블베이스까지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악기도 다양할 뿐더러 드보르자크,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은 물론 비틀스,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연주 레퍼토리도 다채롭다. 대개 1시간 남짓 진행되는 연주회가 시작되면 거실에 옹기종기 앉은 이웃들은 제 집인 양, 다리를 쭉 펴거나 벽에 기대 연주를 감상한다.
이들의 하우스 콘서트는 입소문을 타고 더 많은 아이들이 참석 의사를 밝혀왔으며, 친구 김민지·이용훈·심재형·정지원·정지우에 이르기까지 현재까지 20명이 합류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작은 연주회로 시작했으나, 어린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1년에 두 번 열고 있는 상황. 올해는 '할로윈 데이'를 맞아 특별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지역에는 관객이 없다고 하지만, 정작 찾아가보면 직접적이고 뜨거운 콘서트도 있다. 지역 내 호사가들이 모여 소리 소문 없이 시작한 완주의 '하우스 콘서트'. '주인장' 이종민 전북대 교수(58)의 표현을 빌리자면 "1년에 두 세 번 펼치는 잘 노는 판"이다. 무대는 그의 고향인 완주군 화산면 옛 집을 허물고 새로 지은 공간. 2011년부터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한 이 교수는 "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동을 만들어준다" 면서 연주자들이 이르고자 하는 음악의 목적지에 가장 가까운 길이 바로 하우스콘서트의 마룻바닥이 될 수 있다며 웃었다.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흘러내린 땀이 턱에 고였다가 윗옷에 튀는 장면도, 활을 켤 때 들이마시는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매력에 빠진다는 것.
단골 연주자는 전북도립국악원 단원인 박경미 백은선 이항윤 위은영씨, 시립국악단 단원인 이창선씨, 전통타악그룹 '동남풍', 기타 연주가 안태상씨와 성악가 조창배씨 등이다. '하우스 콘서트'의 기획력은 여느 전문 음악홀 못지 않다. 이 교수와 연주자들은 상의해가며 어느 정도 대중적이면서 또 어느 정도 깊이까지 갖춘 무대를 준비한다. 특히 이들의 콘서트엔 세 가지가 없다. 기침이 나오면 마음껏 해도 되고, 간혹 울리는 휴대전화 벨소리에도 중간 퇴장은 없다. "대형 콘서트 홀에서는 음악이 '소리'로 들릴 뿐이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는 '피부'로 먼저 전해져 온다"는 게 이들의 자랑.
그가 직접 담근 매실주와 화산의 한우가 연주자들을 위한 유일한 출연료다. 서로 죽이 잘 맞는 이들이라 술이 잘 익은 날은 '번개'가 생기기도 하고, 거나하게 취하면 장랑도 거리낌 없이 도전한다.
으리으리한 공연장들이 위용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문턱은 높다. 문화창조 운운하며 국가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자는 얘기만 요란할 뿐,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문화예술의 현장 체험은 빈약해보인다. 곳곳에서 일궈낸 이들의 하우스 콘서트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김정준 문화전문시민 (전주전통문화관 문화사업부 공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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