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사람들은 ‘영호남’이라고 불렀다. 신라에 의해 삼국이 통일되면서 영남이 한반도의 패권을 쥐게 된 이후 사람들은 계속 영남을 먼저 거론했다. 지금부터 약 600년 전 서울을 수도로 정한 조선시대 개막 이후에도 영남과 호남은 조선 8도를 대표하는 지역세력이었다.
호-영남이 됐든, 영-호남이 됐든 지금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은 호남과 영남이다. 서울, 인천, 경기 등 소위 수도권에서도 사람을 만나 한번만 더 깊이 대화를 나눠보면 그 뿌리는 호남이나 영남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수백년, 수천년간 내려온 흐름이 바뀌고 있다.
소위‘영충호 시대’의 개막이 바로 그것이다. 영충호 시대란 곧 영남, 충청, 그리고 호남의 시대를 말한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영충호 시대는 곧 영남과 호남을 중심으로 짜여졌던 기존 판도가 영남, 충청, 호남 순으로 서열이 정해짐을 의미한다.
이시종 충북지사는 지난 12일 도의회 정례회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새해(2014년)를 명실상부한 ‘영충호(영남·충청·호남)시대’의 원년이 되도록 도정을 운영하겠다”고 화두를 던졌다.
이 지사는 내년도 도정운영 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충북 인구가 강원도를 넘어 호남까지 추월했고, 귀농·귀촌 인구도 전국 2위 규모”라고 전제한 뒤 “영충호 시대 개막이라는 역사적 큰 물줄기가 새로이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충호 시대의 개막은 곧 ‘신수도권 시대’를 의미한다면서 충청 발전을 위해 사통팔달의 도로망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충청내륙고속화도로, 천안~청주 복선전철, 이천~충주 전철, 원주~제천~영천 전철 사업이 조속히 마무리되도록 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단순히 국회의원 의석수 한두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충청권은 이미 영충호 시대가 도래했음을 기정사실화 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지역의 지도자들이 뚜렷한 비전아래 뛰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사례다.
본보가 지난 6월(14일자 4면) 안전행정부 자료를 인용, 공식 인구 조사가 시작된 이래 호남권 인구가 처음으로 충청권에 추월당했다는 점을 보도했을때만 해도 그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가 적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뒤늦게 그 의미를 깨닫는 분위기다.
그러면 이러한 때 도내 지도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단순히 의석수 지키는데 연연할게 아니라 지역발전을 위해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 도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밖에서 빵을 가져올 생각은 하지않고, 어느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 지방선거 타령만 할 때가 아니다.
얼마전 유력한 전북 도지사 후보로 꼽히는 A씨와 도내 B국회의원이 크게 다퉜다고 한다. B국회의원이 비공식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만일 A씨가 후보로 나오면 내가 출마해서라도 이를 막겠다”고 한 말이 전해지자, A씨가 다음날 격하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심한 언쟁이 있었다고 한다.
당사자들이 쉬쉬하고 있어 정확한 전말은 알 수 없지만, 전북의 지도자들이 도민의 복지와 지역발전을 위한 비전이나 방법론을 가지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는 커녕, 서로 자신의 밥그릇만 지키려는 것 같아 씁쓸하다.
천지개벽하는 영충호 시대가 열리는 이 순간, 전북의 지도자들은 귀를 막은채 내년 선거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지 고민만 하는 것은 아닌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