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남원 운봉 황산대첩 장면에 / 승전 축하연 벌인 전주 오목대까지 / 알고 보는 재미…나들이 떠나볼까
KBS가 방영하는 드라마 ‘정도전’이 최근 15%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면서, 드라마 속 등장 인물인 정도전과 태조 이성계 등 조선 건국의 주역들이 오랜만에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전주·전북은 태조의 본향이라는 상징성을 갖기도 하지만,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남원 운봉에서의 황산대첩으로 세력을 강화하고, 상경하는 길에 오목대와 이목대에서 축하연을 벌인 장소여서 드라마 정도전의 줄거리 구성에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최근 다시 주목받는 태조의 손길이 닿은 전북. 여말선초(麗末鮮初)로의 역사여행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남원 - 황산대첩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 6년(서기 1380년) 남원 황산(지금의 남원시 운봉읍)에서 왜구를 대파한 전투를 말한다.
같은 해 8월, 진포(군산)에서 고려군에게 대패한 왜구는 금강 상류로 올라가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로 진입, 지금의 상주·구미·경산 등의 지역에서 만행을 일삼는다. 이에 고려 조정은 이성계를 전라·경상·양광 3도 도순찰사에 임명해 왜구토벌을 명하고, 마침내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과 젊은 장수 아지발도를 두목으로한 왜구는 이 일대 교통의 요충지인 황산에서 마주친다.
고려군의 선공으로 시작된 전투는 치열하게 전개됐고, 이성계는 손등과 다리에 화살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계는 뛰어난 전략으로 퉁두란(이지란. 태조가 훗날 이씨 성을 하사함)과 합세해 아지발도를 사살하고, 마침내 왜구의 대오는 흐트러져 고려군은 대승을 거둔다.
이때 전사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 6, 7일간이나 물을 마실 수 없었다고 하며, 포획한 말은 1600여 필에 달했다고 한다. 사가들은 이 전투를 왜구 격파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싸움으로 보며, 이를 계기로 왜구의 발호가 쇠퇴했다고 한다.
△ 전주 - 오목대, 이목대, 경기전, 조경단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에서 황산대첩을 거두고 귀경하던 중, 일가친지를 불러 잔치를 벌인 곳이며, 이목대는 태조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까지 거주한 곳이다.
오목대와 이목대에는 ‘臺’자를 쓰는데, 이는 청와대에 쓰이는 ‘대’자와 같은 것으로, 이곳이 한 나라의 정통성과 관련있는 격조 높은 장소라는 것을 뜻한다.
경기전은 최근 한옥마을로 전국적 지명도가 다시 높아졌지만, 조선시대에는 그 중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조선 태종 10년(서기 1410년), 태조 이성계의 어진은 한양 외 전주·경주·평양·개경·영흥 등 지방 5곳에 봉안됐다. 경주·평양·개경 3곳은 한 시대의 수도였고, 영흥은 태조의 출생지인 점을 보면, 태조의 본향인 전주가 당시 얼마나 중시되는 지역이는지 유추할 수 있다. 현재도 전주는 태조 어진과 어진을 모신 진전(경기전)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다.
조경단은 조선 왕가이자 한국에서 3번째로 많은 성씨인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지난 1899년 고종황제가 이곳에 단을 쌓아 당상관을 배치해 ‘대한조경단’이라 명명하고, 친히 어필을 내린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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