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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의 부부학

'밀당'으로 점철된 역사 '당밀'프레임 전환해야 진정한 부부 될 수 있어

▲ 김희관 대전고검장
지난 달 또 이사를 했다. 3년만의 이사다. 결혼 후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10차례 넘게 이사를 한 것 같다. 여자들에게는 야단맞을 소리지만, 이사를 보통 평일에 하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장을 핑계로 귀찮고 힘겨운 이사의 노동으로부터 합법적으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이삿날이 금요일인데다 근무지가 지방인 탓에 이사 당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 대신 말이나마 아내에게 “금요일 직장일을 마치고 최대한 빨리 서울에 올라가 짐정리를 도울게”라고 했더니, 아내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니 저녁 먹고 천천히 들어오라고 했다.

 

옛날 같으면 순진하게도 아내 말대로 했을지 모르겠지만, 25년의 결혼연륜을 쌓은 필자로서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는 자칫 봉변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었다. 아니 안다기 보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리라. 50살의 문턱을 넘은 중년 남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위기의식과 생존본능이 필자에게도 작용했던 것이다.

 

아무튼 금요일 저녁 서울역에 내린 다음 곧바로 이사한 집으로 직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짐정리에 정신이 없는 아내는 머쓱한 표정으로 나타난 나의 얼굴을 향해 다짜고짜 눈을 흘기는 것 아닌가. 그 순간 딴길로 새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직행을 결정한 나의 판단력에 감사했다. 집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것 치워라, 저것 가져와라 하면서 작업지시를 쏟아 놓는 아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한참 동안 군소리 없이 사역을 하다가 서서히 아내의 굳은 표정이 펴지는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돌이켜 보면 올해 25주년을 맞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밀고당기기, “밀당”으로 점철된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부부관계를 주도권을 둘러싼 샅바싸움으로 접근하는 식의 ‘밀당’의 프레임으로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부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상대방을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꿀물(sweetheart)’로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당밀(糖蜜)’의 프레임으로 바꾸어야만 둘이 하나되는 참된 부부가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런 점에서 다음 예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남태평양의 한 섬에 자니 링고라는 남자가 사리타라는 처녀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 섬에서는 결혼을 할 때 남자가 여자측에 지참금으로 암소를 지불하는 풍습이 있었다. 링고는 결혼에 앞서 암소 8마리를 지참금으로 주었는데, 이것이 동네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샀다. 왜냐하면, 사리타는 남태평양의 사회적 기준으로 볼 때 신부로서 그리 예쁜 편이 아니어서 암소 1마리만 줘도 충분했는데, 무려 8마리나 지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리타가 해가 갈수록 믿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모해 갔던 것이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니라 링고가 사리타에게 암소 8마리의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그녀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기 때문이었다. 암소 8마리의 가치를 부여받은 사리타는 정말로 암소 8마리 가치의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가치있게 봐주는 눈, 넉넉하게 평가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상대방을 변화시킨다. 남편이 아내를 왕비로 대우하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왕으로 대우하면 왕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결혼식이 한창인 이 계절의 예비 부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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