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서로 다른 명분을 조정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행위이다. 정치가 필요한 것은 서로 다른 명분을 가진 집단들이 상대의 주장을 이해하며 타협을 시도할 때 소모적인 결정과정을 줄이고 생산적인 질서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보는 달리는 기차처럼 명분이 충돌하는 정치는 파괴적이고 어리석다. 현실성과 실효성을 염두에 두고 서로의 명분이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것이 좋은 정치이다.
전북도의회가 추진하고 있는 ‘출연기관장 인사검증 조례’의 제정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이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적 타협의 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지사가 20개가 넘는 출연기관장을 능력보다 친분에 의해 선택하는 정실인사를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도의회의 주장에는 명분이 있다. 과거에도 출연기관장은 논공행상이나 ‘끼리끼리’ 파당 짓기의 결과인 적이 많았다. 도의회가 검증하고자 하는 10개 출연기관의 장은 도지사의 개인적 이해에 의해 움직여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리이다.
도지사에게 능력 있는 인물을 뽑을 수 있는 인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명분이 있다. 도지사가 인사권을 행사하면서 도의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간섭을 사사건건 받아야 한다면 소신을 가지고 행정을 해나갈 수 없을 것이다. 도지사가 요긴하게 쓰고 싶은 인물이 사전 또는 사후 검증제도를 거치면서 능력과 철학을 점검받기 보다는 사적인 문제로 정치적 흠집이 나는 일이 반복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두 가지 명분이 나름 일리가 있지만 이제는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사검증 조례안의 현실성과 실효성을 따져야 한다. 안전행정부의 유권해석이나 법원의 판례는 인사검증에 관한 조례의 위법성을 명시하고 있다.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도의회가 위법한 행위를 할 수는 없다. 현실성 없는 조례 제정의 추진으로 소모적인 정치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인사검증 조례 제정의 뜻을 살릴 현실적 대안을 찾아 타협할 때이다. 다른 지자체도 출연기관장을 임명할 때 사전 또는 사후에 단체장과 의회가 협의하는 절차나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사후 검증제도라도 의회 자체로 만들겠다는 실효성 없는 정치행위를 중단하고, 도지사가 의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관행을 제도화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한다. 도의회와 도지사 모두 명분만을 고집하지 말고 현실을 고려하고 타협을 추구하는 좋은 정치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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