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논의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그 동안 선거구 획정은 항상 선거를 얼마 안 남기고 졸속으로 이뤄져 왔으며, 그 결과는 변함없이 기존 의원들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좀 다를까 하는 기대를 약간 하게된다.
낙관적 기대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10월 헌법재판소가 표의 등가성 원칙을 내세우며 선거구간 최대 인구 편차 기준을 3:1에서 2:1로 낮추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 충격은 의원들을 어려운 정치적 상황에 빠뜨렸다. 새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기존 선거구의 대대적 개편이 불가피하며, 많은 농촌 출신 의원 지역구를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의원 개인 문제만이 아니다. 인구 기준을 강조하면, 수도권에 비해 지방, 도시에 비해 농촌 지역의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농촌 대표성 훼손 가능성 높아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정치권이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중앙선관위 산하에 설치하면서 과거에 비해 독립성과 권한을 강화해 주었다. 단순히 선거구획정 문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선거제도 개편과 의원 정수 문제까지 폭 넓게 논의는 것도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현재 정당에 따라, 또 의원 개인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당파적 이익, 의원 개인의 이익을 떠나서 보다 객관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어떠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까? 참여연대가 지난 6월과 7월 선거·정당 등 정치과정을 전공하는 정치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1.2%가 현행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응답자 70% 이상이 의원 정수를 33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대답했다. 정치학자라고 해서 개인적인 정치성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치인에 비해서 덜 당파적이고,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 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조사 결과에 대해 일부 국민은 놀랄 수 있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은 정치인 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민은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한다. 물론 대부분이 선거제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정치에 대한 폭 넓은 불신을 가진 상태에서 의원 정수 확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다수 정치학자들은 의원 정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한국 정치에 대한 긍정적 평가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한데, 선거제도 개편을 위해서 의원 정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학자들이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수 확대 없이 헌재의 2:1 기준에 따라 선거구 획정을 할 경우 지방과 농촌의 대표성 훼손이 불가피한 정치 현실 때문이다. 만약 의원 정수를 확대한다면, 이를 비례 의석에 배정한 후 비례 의석을 권역별 혹은 광역단체별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지방과 농촌의 대표성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 의석 배분으로 보완을
선거구 획정이라는 난제 해결의 열쇠는 의원 정수 확대에 있다. 물론 국민 사이에 널리 퍼진 정치 불신을 고려할 때 의원 정수 확대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원 정수 확대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한국의 정치발전과 연계되어 있으며, 또한 이를 통해 지방과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언론이 힘을 합하여 국민을 얼마든지 설득할 수 있다.
현재 의원들은 국민 여론을 핑계로 의원 정수 확대에 매우 소극적이거나 반대한다. 사실 의원 정수 확대는 기존 의원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의원 수가 확대될수록 희소가치와 특권의식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의원들이 국민 여론을 무기 삼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러한 의구심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의원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일부 포기하는 조건으로 의원 정수 확대를 제안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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