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 증오 도화선…프랑스 테러 거울삼아 우리 자화상 그려볼 때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유년시절 영화 포스터에서 보았던 문장이다. 그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선명하다. 알고 보니 ‘태양은 가득히’로 유명한 르네 클레망 감독 작품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궁지에 몰린 히틀러는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라 명령한다. 하명 받은 파리 점령군 사령관은 고뇌에 빠진다. 예술의 도시 파리를 불태워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인가? 주저하는 사이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아 결국 항복하게 되고, 그때 히틀러로부터 걸려온 전화 수화기에서 나오는 절규가 바로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이다.
불행히도 지난 13일의 금요일, 파리는 불타고 있었다. 130여명의 무고한 희생을 낳으면서. 용서받지 못할 자들의 천인공노할 소행이 빚은 세계사적 비극으로 강력한 응징이 요구되지만, 사태의 원인은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 따르면, 참사의 근인(近因)은 프랑스 인구의 10%에 달하는 이슬람 인에 대한 차별, IS 타도를 외치는 미국에의 동조, 난민에 대한 강경입장 고수 등으로 집약되는 듯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본다.
프랑스의 국시는 자유·평등·박애로,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낳은 정신 유산이다. 박애는 원어 그대로 직역하면 형제애인데, 사해대중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뜻이리라.
필자가 유학했던 1980년대만 해도 파리는 외국인들의 천국이었다.
세계제일의 자유도시 파리는 모든 이의 사랑을 받았다. 당시는 사회당의 미테랑 집권시절인데, 필자 같은 유학생에게도 주택수당, 자녀수당을 지급했다. 감읍할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우파연합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서 외국인에 대한 대접이 확 달라진다. 수당 감축, 체류심사 강화, 불법이민자 추방(족쇄를 채운 채로!)이 뒤따랐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의 장 마리 르펜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선동해 인기를 끌었고, 그의 사후에도 딸 마린 르펜이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현상은 프랑스의 치부다. 프랑스는 1966년 미국 주도의 NATO 통합군에서 탈퇴했으며, 미국의 모국인 영국과 항시 으르렁거리는 등 미국의 눈엣가시였다. 오늘날 중국 같은 자리를 차지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은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이 크게 위축되어 미국 말 잘 듣는 변방의 모범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점들을 종합할 때, 이번 파리 참사의 근저에는 프랑스혁명 정신의 퇴색이 있지 않나 싶다. 프랑스의 정치적, 경제적 위세가 실추됨에 따라 국가사회의 기조가 점차 개방에서 폐쇄로, 열정에서 냉정으로, 관대에서 인색으로 변해 왔다.
그들의 국민성이라 할 톨레랑스(Tolera nce), 즉 관용의 정신도 잃어가고 있다. 포용과 개방성을 자랑하던 파리지앵들이 협량(狹量)의 속물로 퇴락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다행히 프랑스 국민들이 기죽지 않고 그들 특유의 낙천적 삶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외신이다. 가장 효과적인 대테러 방책은 빗장 걸기가 아니라 자유의 의연한 과시일지도 모른다. 쇄국과 인종차별, 감시와 처벌이 횡행하는 사회에는 증오와 갈등, 이기심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그리고 그것들이 누적되면 언젠가 폭발한다. 13일의 금요일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불타는 파리를 거울삼아 우리의 자화상도 그려볼 일이다. 증오의 도화선은 이 땅에도 매설돼 있을 것이다. 테러는 결코 남의 집 불구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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