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로…정여립로…전주 색다른 도로명서 전북인 강한 내면 느껴
전북에 부임해 온지 벌써 반년이 다 돼간다. 전북이 고향이 아닌 필자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새롭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로움이 참 좋다. 근무지인 전주에서는 전통문화 공연이 일상생활 속에 스며있다. 현장에서 듣는 우리 가락이 흥겹다. 듣다보면 장단을 맞추느라 저절로 다리가 까딱인다. 잠자고 있던 한국인 DNA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맛깔스런 음식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들의 애향심도 새삼스럽다. 수십년 서울 살면서 잊고 살아온 정서다. 성정은 대체로 점잖고 유순한 것 같다. 다들 잘 대해 주시니까 마음이 푸근해 진다. 가끔 듣는 말이 음식점들이 서울 기준으로 보면 다소 덜 친절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지나치게 과장된 친절보다 그냥 친절할 만큼만 친절한 게 좋다.
전주에서 생활하면서 살짝 놀라움으로 다가온 것 중 하나가 몇몇 길 이름이다. 현지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과 달리 객지 사람들에게 길 이름은 매우 요긴하다. 어디를 갈 때 건물이나 동 이름이 아니라 길 이름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 전주에 온지 얼마 안돼서 지인들과 전주역에서 한옥마을을 가게 되었다. 네비를 찍고 가는데 전주역에서 시작되는 8차선 큰 길 이름이 백제대로였다. 그런데 백제대로를 따라 얼마 안 가 만난 첫 번째 큰 길이 견훤로였다. 거기서 얼마 안 가 만난 두 번째 큰 길 이름은 또 견훤왕궁로였다.
TV사극이나 이야기책 속에서 견훤이 우호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 승자들이 기록하는 역사에 바탕을 두기 때문일 것이다. 극적인 인물 대비를 위해 과장되게 묘사하는 데도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쨌든 그렇게 묘사되는 견훤을 대개는 부담 없이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전북과 전주에서 마주치는 견훤은 다르다. 말년이 스산하여 정서적 공감까지 불러일으키는, 일세를 풍미한 영웅인 것이다.
정여립로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여립로는 한창 조성되고 있는 만성지구 외곽을 싸고도는 길이다. 정여립은 조선 선조 때 과거에 급제한 선비다. 재주가 비상했다고 한다. 재주를 믿고 대동계를 조직하여 역모를 꾀하다가 자살한 것으로 나와 있다. 견훤의 경우 하나의 왕조를 개창하였기 때문에 어떤 시대 가치나 의식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달리 평가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 정여립은 조금 다르다. 정여립하면 아직도 역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전북과 전주는 정여립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여립에 대한 다른 평가는 어쩌면 다수일 수 있는 기존 인식을 떨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정여립은 당대 기존질서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 거역은 당시 핍박받던 일반 백성들의 이해와 일맥상통했다. 전북과 전주 사람들은 정여립의 그런 측면을 높게 평가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전북과 전주 사람들이 속없이 점잖한 것은 아닌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내면의 옹골참이 느껴진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속 가사처럼 반전의 묘미가 있다.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전북과 전주의 위상이 추락했다는 한탄을 종종 듣는다. 전북이나 전주의 잘못이라기보다 대양진출이 중시되었던 시대흐름의 반영으로 보인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 아닌가. 대양과 대륙이 균형을 맞추는 시절이 오면 전북과 전주의 영화로운 시대가 다시 올 것이다. 올곧은 심지를 잃지 않고 준비하면서 기다려 볼 일이다.
△강성대 본부장은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팀장, 조사국 팀장, 기획협력국 팀장, 지역협력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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