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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 적 꽃할머니를 떠올리며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꽃할머니, 저번에 말린 꽃은 어떻게 됐어요?”,“아주 예쁘게 잘됐어. 들에서 국화꽃을 또 한 움큼 꺾어 왔지.” 꽃할머니는 꽃누르미를 하신다. 꽃할머니 얼굴은 두 가지다. 시무룩한 얼굴과 활짝 웃는 얼굴.“웃어 보려고 해도 웃을 일이 없어. 뭐 그렇게 크게 웃을 일이 있어? 좀 삐죽 웃으면 되지.”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꽃 이야기를 할 때면 늘 활짝 웃으신다.

 

『꽃할머니』란 그림책의 첫머리다. 꽃누르미를 잘해서 꽃할머니로 불렸던 이 책의 주인공 심달연 할머니는 암투병중의 몸으로 2010년 6월 책 헌정식에 참석한 후, 같은 해 12월 돌아가셨다.

 

소녀들 강제로 끌고 간 일본군 만행

 

꽃할머니가 열세 살 무렵, 언니와 함께 들에서 나물을 캐고 있는데 갑자기 두 남자가 나타나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아끌어 강제로 트럭에 태웠다. 그리고 다시 배를 타고 며칠을 갔을까, 낯선 나라에 내렸다. 한쪽으로 강이 흐르고 산비탈에 막사가 있었다. 막사 안에 칸칸이 들어 있던 작은 방 하나에 구겨 넣어진 꽃할머니는 그날부터 방 앞에 줄을 선 일본 군인들을 차례차례 온몸으로 받아내어야 했다. 반항하다가 관리인이 던진 칼에 무릎 안쪽이 찢어지기도 했다. 정신을 잃은 날도 많았다. 전쟁이 끝나자 할머니는 버려졌다. 한국의 어느 절에 누구의 손에 의해 맡겨졌는지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한다. 우연히 그 절에 불공드리러 온 여동생과 기적처럼 만나 고향으로 돌아온 꽃할머니는 숱한 세월을, 일본 군인들에게 폭행당하는 꿈을 꾸며 고통 속에서 보냈다. 50년 세월이 지난 어느 날, 꽃할머니의 아픔을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마음 문을 열면서 꽃누르미를 시작했다. 꽃누르미 작품으로 상을 받을 정도로 할머니의 솜씨는 뛰어났다.

 

1940년 열세 살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강제로 트럭에 실려 간 이후 다시는 언니를 만나지 못했다. 할머니의 언니처럼 대부분의 ‘위안부’는 일본군과 전쟁터를 함께 옮겨다니던 중 죽거나, 전쟁이 끝난 후 그대로 버려져 일본, 대만, 중국, 동남아시아 등 낯선 땅에서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되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용감하게 ‘일본군 위안부’ 증언에 나섰던 238분의 할머니 중 이제 46분의 할머니만 생존해 계신다.

 

일본은 이 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그들의 추악한 역사를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자국의 역사교과서를 거짓으로 덧칠하고 적반하장의 망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일본이 기다린 건 역사를 지울 시간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역사를 다시 현재 속으로 불러들여 진행형으로 형상화한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대사관 앞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 세워지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법적 배상, 가해자 처벌 등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여러 나라에서 통과시키자 일본이 불편해 한 건 무엇이었던가. 오로지 자국의 국제적 위신에만 급급해 하지 않았던가. 중국을 견제한 한·미·일 공조체제 강화를 위한 미국의 입김에 의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이것으로 일본은 ‘위안부’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표명했으니 앞으로 더 이상 한국은 ‘위안부’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행동도, 조처도 취하지 말라는 명령과 다를 게 무언가. 식민지 지배와 대규모의 전쟁 범죄에 대해 지금까지 국제적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전쟁 범죄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인권 유린이 ‘위안부’ 아니던가.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빠진 협상, 일본의 국가적 책임이나 진정한 사죄가 빠진 허울뿐인 형식적 합의, 가해국이 오히려 피해국을 향해 ‘위안부’ 문제는 앞으로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협박하는 듯한 명령조의 합의, 이게 도대체 합의인가. 졸속으로 합의를 하게 된 계기와 불온한 저의가 미심쩍기 그지없다.

 

평화의 소녀상 앞 외침 귀 기울여야

 

정부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 기록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사업’도 변함없이 추진해야 한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합의 무효화를 외치며 연일 집회를 여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들의 분노에 찬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책 헌정식 때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곱게 차려 입고 마냥 부끄러워하던 꽃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자니, 그분의 열세 살 적 해맑았을 미소가 꽃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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