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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대상 교육프로그램 운영 문화예술단체 '라온'] "세상에 나를 이야기해요" 서툴지만 뜨거운 그들의 도전

정읍천사마을 지적장애인들, 요리·그림·사진에 풍덩 / 느리고 어눌하지만 저마다 가능성 발견하는 기쁨 커 / "작품사진 전시회 통해 사회적 편견 벗는 계기 됐으면"

▲ 정읍천사마을 지적장애인들이 경단 만드는 과정을 배우며 즐거워하고 있다.

“손 씻고 오세요.”

 

“크기는 일정해야 해요. 서로 서로 비슷하게.”

 

30-50대의 젊은 남녀 10명 정도가 두 테이블에 둘러 앉아 선생님의 주의사항을 들으며 경단을 빚고 있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밤톨만한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모두가 비닐장갑을 끼고 신기한 듯 경험해본다. 선생님은 반죽할 때는 더 힘주어 해야 한다고 몇 번 씩이나 강조한다. 노란 카스테라를 곱게 걸러내는 일도 해본다. 선생님은 함께 둘러 앉아 시범을 보이며 잘 할 수 있도록 한 명씩 한 명씩 요령을 일러준다. 몸 움직임이 좀 느린 듯 하면서도 시선은 반죽 행위에 집중하는 이들은 1, 2급의 지적장애인들이다.

△사진 찍는 게 될까?

 

이들이 ‘특별한’ 경험을 하는 곳은 정읍시 신태인읍에 위치한, 장애인 생활공간인 정읍천사마을이다. 매주 목요일 오전, 문화예술교육단체 라온의 세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찰칵! 이야기를 시작하다”에 참여하여 자신들을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 이들이 경단을 빚기 전에는 투명한 비닐 앞치마에 검정색, 파란색, 빨간색 매직으로 각자 뭔가를 표현하도록 하는 그림 그리기를 하도록 했다. 직접 그림으로 표현한 앞치마를 두르고 경단 만들기를 경험해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지능지수(IQ) 34 이하를 제1급, 35-49를 제2급 지적장애인으로 구분한다. 예전에는 정신박약아 또는 정신지체인이라고 하였으나 이 호칭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지적장애인으로 바꾸었다. 네이버의 두산백과에서는 지적장애인을 “정신 발육이 항구적으로 지체되어 지적 능력의 발달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하고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것과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상당히 곤란한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읍천사마을의 박현배 원장은 1, 2급 지적장애인의 경우 대체적으로 한글 습득이나 간단한 산수도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하면서도 지적 능력이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 글자를 전혀 모르는 데도 스마트폰으로 유투브 동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10여 명 중에는 한둘 정도가 한글을 습득한 경우라고 한다. 박 원장은 처음에 이들이 교육에 참여해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요리하는 게 될까, 생각했다고 한다.

 

△립스틱 바르고 선글라스 낀 날엔

 

이들은 저마다 사진기를 들고 촬영하는 법을 배우고 각자 촬영하거나 서로가 서로를 촬영하며 촬영된 사진이미지를 보며 매우 즐거워 한다. 안진희 선생님의 말이다. “이남숙 씨의 경우 처음에는 사진기 프레임 안으로 사물이 들어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달라졌죠. 종이에 점 하나 찍는 것도 못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그리기를 해요.”

 

이현자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요리 경험은 커녕 원재료들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이들 중 여성의 경우 ‘요리본능’이 있더라고요.” 박삼미씨를 사례로 든다. 박삼미 씨는 요리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하려 하고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기도 한다.

 

“삼미 씨는 오늘 정읍시내로 나가는 동료들이 있어 따라 나가려고 했는데 요리를 한다 하니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삼미 씨는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빨갛게 립스틱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나요. 그러고선 립스틱 바르고 선그라스 낀 날은 자기를 건들지 말라고 경고(?)해요. 삼미 씨처럼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나 미용실 갔다 왔어

 

라온의 선생님들은 이들이 각자의 시선에 따라 사물을 만져보며 촉감을 느끼고 또한 향기를 맡고 느끼면서 표현활동을 하게 한다. 생활세계를 둘러싼 것들에 대해 감수성을 키워 조금씩이나마 삶의 독립 주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선생님들의 이러한 태도는 정읍천사마을의 방향과 비슷하다. 표현행위나 삶의 자기결정권이 지적장애인들에게는 보호자에게 위임된 경우가 많지만 박현배 원장은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는 시설 안에서만 생활하지 않아요. 이 사람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 비장애인과 만나길 바라거든요. 이쁘게 머리 손질을 하고 싶어 미용실에 가겠다고 하면 우리가 동행해줘요. 각자의 판단에 맡겨 능동적으로 선택해서 움직이게 하고, 우리는 그걸 도와주는 거고요. 다양한 학습과정을 경험하도록 하는 사회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그러다보면 어떤 부분은 예상치 않게 잘하기도 해요.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못하게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발견해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워주려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지금 선생님들이 하시는 문화예술교육의 수확이랄까, 그 성과가 있는 것 같아요.” 지적장애인들이지만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머리 하러 정읍 시내에 다녀 오고 나선 “나 미용실 갔다 왔어” 하며 자랑한다고 한다. 정읍천사마을은 하루 일정 중 이들 각자가 원하는 희망활동을 1순위로 선택하여 활동하게끔 배려한다.

 

△작품사진 전시회가 줄 메시지

 

안전과 청결에 대해서는 매우 주의하는 모습이다. 경단 만들기처럼 불을 사용해야 할 때는 불 사용을 최소화하며 그때그때 주의를 환기한다.

 

동글동글 빚은 경단 알을 삶는 곳으로 그 과정을 궁금해 하며 박삼미 씨가 접근하자 이현자 선생님은 요리 과정과 상황을 설명해주며 “좀 떨어져 있어야 해요” 라고 당부한다. 이들은 자기가 만든 음식에 대해 애착이 강하다. 이 날은 사회복지사 직원도 함께 참여했다.

▲ 사진 교육을 받으며 직접 사진을 찍어보고 있는 김건씨.

경단 만들기 체험하는 와중에 유성수 선생님은 그림 그리기도 잘 하고 사진에 관심을 많이 보이는 김건 씨에게 경단 만들기 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보도록 권유하고 피사체 조정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서툰 말, 어눌한 행동으로 담아내는 피사체 모습일지언정 김건 씨의 시선엔 또다른 세상이 열리는 과정일테다.

 

처음엔 돌발행동이나 거친 행동을 하던 몇몇도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사그라들었다. 격려와 칭찬을 해주면서 이들과 소통한 효과다. 기회가 되면 이들과 함께 음악 합주를 하고 싶다는 유성수 선생님은 야외활동을 할수록 교육효과가 더 좋다고 한다. 세상에 나가 세상과 대화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일까.

 

올해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면서 할 이들의 작품사진 전시회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나 왜곡된 시각을 벗어나게 하는 메시지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고길섶 문화비평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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