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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 '꽃장']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작품이 된 '꽃길'

누군가 꽃나무 가꾸기 시작…이웃들 동참해 '꽃길' 만들어 / 마을에 이사온 청년사진작가…주민 한데 모이는 '꽃장' 기획 / 압화 등 예술품 만들어 장터에 값…매기기보다 응원의 잔치로

▲ 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에서 열린 마을 장터에서 주민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터에는 삶의 무늬가 존재한다. 과거와 현재의 일상이 공존하며 삶터에는 새로운 무늬들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무늬가 쌓이면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어느 한 동네에 꽃나무를 나눠주는 어르신이 계신다. 종묘장에서 꽃나무를 가져다 집 앞에서 가꾸고, 한 두송이 더 가져다 이웃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함께 가꾸기 시작했다. 한해 두해 길러낸 꽃나무가 제법 자리를 차지하더니 집 앞과 옥상에 계절마다 형형색색 꽃을 피워 예쁘게도 마을을 물들였고, 그리하여 이제는 ‘꽃길’이라는 별칭까지 얻은 마을이 되었다.

 

‘꽃길’이라는 별칭을 얻은 곳은 바로 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이다. 원래 문화촌은 1000년 가까이 기린봉에서 내려온 물을 가두었던 저수지였다. 둘레에는 아름드리 능수버들이 늘어졌고, 아름다운 정자들이 서있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시대 때 저수지가 메워지고, 공설운동장이 되었다가, 1969년 공설운동장이 철거된 후 중앙정보부와 문화촌으로 상징되는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터를 잡았다. 네모 반듯 깔끔하게 정돈 된 골목과 도로, 2층 양옥집으로 고즈넉하게 지어진 집들은 오랜 세월 풍파에 허름해 졌어도, 그 기세가 등등해 보인다. 이제는 꽃들이 더해져 아름다움까지 더한 길이 되었다.

 

△어르신과 청년작가, 꽃길에서 만나다

▲ 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에서는 ‘꽃장’을 통해 마을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장터를 열어 서로 소통하고 있다.

꽃길이 되어가던 문화촌에 청년사진작가(장근범 씨)가 이사 와 새 둥지를 틀었다. 이 청년사진작가는 뚝딱뚝딱 본인이 살 집을 고치다, 어느새 마을의 모습과 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분자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뭔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어르신들은 젊은이들이 살아보지 못한 세월을 먼저 살고, 경험하지 못한 삶을 경험했다. 시간이 쌓아올린 세월의 경험치는 미래를 살아갈 젊은이들에게 큰 배움이 된다. 청년들의 계절은 새롭다. 다양한 것들을 색다르게 받아들이며 꿈꾼다. 오래됨과 새로움. 그 안에 녹아나는 가치들이 만나면 큰 에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2016년 어르신과 청년작가들이 ‘꽃장’이라는 꽃길에서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어르신, 삶을 이야기 하다

▲ 전주 중노송동 문화1길에서는 ‘꽃장’을 통해 마을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장터를 열어 서로 소통하고 있다.

꽃길에서 만나니, 그 만남의 매개는 당연 꽃이다. 둥지를 튼 사진작가의 집 1층이 마을의 사랑방이 되어 매주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끔 밥해 먹는 공간이 되었다. 어르신들이 꽃을 매개로 나누고 가꾸는 활동만 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청년작가들과 새로운 것을 시도할 준비를 한다. 주변을 살피면 기술적으로 배움을 가르치는 곳은 많으니, 이곳이 굳이 기술을 습득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은 아니길 바랐다. 삶을 살아가는 공간이니, 어르신들의 삶이 풀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생산적 공간이기를 바랐다.

 

‘인간의 세포는 분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르신의 세포가 어떤 이야기로 구성되었는지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것부터 청년작가들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사랑, 결혼, 출산, 일 등 어르신의 삶을 구성하는데 중심에 놓였던 주제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래전 꽁꽁 숨겨 놓았던 이야기를 물으니 어르신들이 천천히 기억을 더듬는다. 더듬을수록 기억은 생생해지고,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함께 나눈 사랑에 대한 이야기 중 연세가 제일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사랑은 배려다, 배려해야 만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남아요. 어르신들과 이야기 하면서 어르신들이 생각하는 깊이감이 청년인 우리와는 정말 다르구나 하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되었어요.” 청년작가로 참여했던 전수진 작가는 사랑을 주제로 어르신들을 만났다.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깊이감 때문에, 당연하다 생각 했던 이야기들이 더 큰 울림으로 전해져 왔다고 한다.

 

청년작가들과 매 차시 주제를 가지고 나눈 이야기가 이제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어르신은 경험과 세월을 들려주고, 청년작가는 어르신에게 작품을 통해 새로움에 대한 경험을 제공한다. 일방향적 배움과 가르침이 아닌 서로간의 등가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가 브랜드가 되는 장터, 꽃장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인 작품은 꽃장이라는 이름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어르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터에서 진행했기에 장터 또한 삶터에서 진행한다.

 

매서운 겨울추위가 찾아오려는 문턱에서 진행한 2017년 마지막 꽃장은 마을잔치라는 이름처럼 소박하게 진행되었다. 한해 함께 살아냈으니 잘했다고 서로 박수치고 토닥여 주는 자리로 마련된 것이다. 거창하고 사람이 북적이는 공간이기 보다, 소소하게 어르신의 삶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기를 바랐다.

 

꽃을 매개로 하다 보니 곳곳에 꽃들이 보인다. 매대 마다 어르신들의 작품이 놓여있다. 놓여있는 작품마다 어르신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시간과 노력이 담겨있다. 그래서 돈으로 교환가치를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2016년 장터에서는 에 어르신 자신이 직접 값을 매기기보다, 손님 스스로가 가격을 요구하고, 어르신은 그 가격에 동의하여 작품을 판매했다. 생각보다 큰 가격이었지만, 스토리에 감동한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구매했다. 팔릴까 걱정했던 어르신들도 덩달아 신이 났다.

 

꽃장을 장근범씨와 함께 기획한 맹그러브 대표 김명규씨는 “꽃장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스토리가 브랜드가 되는 장터로써 자리매김 하는 공간이기를 바란다. 더불어 돈으로 어르신의 스토리에 가격이 매기고 판매하기 보다는 다른 방식으로써 교환가치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이야기 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소중해 지는 과정

▲ 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

요즘, 새로운 것을 접하거나 배우기 위해서는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야 가능한 것들이 많다. 일상이 단절된 공간에서의 배움은 낯섬을 경험하는 것 외에는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꽃장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평생을 살아온 삶의 공간에서, 어르신 자신의 세포를 구성하는 이야기를 통해 일상의 변화를 청년작가들과 함께 만들어 낸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소중해지고 새로워진다.

 

서로 다른 세대가 만나는 것은 균열을 만들어 내는 일임으로 순조롭지만은 않다. 서로가 생각하는 모습들이 있기에 그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 균열을 만들고 다시 메우는 일은 서로의 세대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삶터에 또 다른 무늬를 그려가는 일임을 알아간다. 그렇기에 서로 다른 세대가 관계를 만들어가고 소통하는 것은 지난하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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