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억울한 일들이 어디 한 두가지랴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누명을 뒤집어쓰는 것만큼 분통 터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신문고를 두드리다 못해 종국엔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간사가 이럴진대 동물 세계에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약육강식의 냉엄한 정글법칙아래 재수 없어 잡아먹히면 그만이고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다. 동물중에는 주로 개, 돼지, 쥐 등이 그렇고, 물고기 중에는 밴댕이, 꼴뚜기, 도루묵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오뉴월이 제철인 밴댕이는 내장이 작아서 그물에 잡히면 부르르 떨다 제풀에 즉사하니 싱싱한 활어맛은 보기 어렵다. 그래그런지 옛날부터 잘 삐지는 속좁은 사람을 ‘밴댕이 소갈머리’라 고 흉보고 경멸해왔다. 밴댕이의 태생이 그러할 뿐 인간의 인격과는 아무 상관도 없을진대 밴댕이로서는 진짜 억울한 누명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말도 삼가해야 할 것이다
너무 맛있게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게 가을전어라면 봄철엔 밴댕이가 그몫이다. 조선조땐 밴댕이를 소어(素魚)라 불렀고, 소어젓은 수라상 단골메뉴라 명나라 황제 진상품에도 뽑히고, 경기도 안산에는 밴댕이를 관리하는 소어소도 있었다고 한다. 낚시광 정조대왕은 밴댕이를 최고의 하사품으로 삼았고, 이순신의 <난중일기> 엔 밴댕이젓을 모친께 보냈다는 기록도 있고보면 밴댕이는 여간 귀물이 아니다. 밴댕이는 철분이 많아 한 마리에 횟감 딱 한 점씩을 깻잎에 싸먹거나 밴댕이무침, 밴댕이 완자탕, 밴댕이구이로 먹으면 피부미용과 정력, 골다공증에 특효라니 “밴댕이 소갈딱지가 뭐 어때서?”이다. 난중일기>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킨다”는 꼴뚜기도 억울하긴 마찬가지다. 작고 뭉툭한 몸길이 6~7cm에 숏다리라 좀 볼품이 없긴 해도 많은 생선중에서 하필 자기가 지목된 게 화가 난다. 사촌격인 한치, 오징어, 문어는 오히려 각광을 받고 있지 않은가. 연체동물인 꼴뚜기는 화살꼴뚜기과의 두족류(頭足類)로서 먹골꼴뚜기와 참꼴뚜기로 분류된다. 경상도 방언으론 ‘호래기’라 불리고, 옛문헌 <재물고> <물명고> 에는 골독어(骨獨魚), <사류박해> 에는 망조어(望潮魚)로 불리니 그리 나쁜 이름도 아니다. 꼴뚜기는 3월이 산란기인데 4~5월에 집어등으로 유인해 그물망으로 잡고 주로 젓갈로 담아먹는다. 사류박해> 물명고> 재물고>
도루묵은 또 어떤가. 대체 도루묵이 뭘 잘못했기에 “말짱 도루묵‘이라고 뒤집어 씌우는가. 동해안 근해 속초 동명항, 양양 물치항, 수산항 등이 집산지인 도루묵은 겨울철 냉수성 어종으로 목어(木魚)라 불린다. 입안에 톡톡 터지는 알맛, 연하고 담백한 살맛이 겨울 별미지만 팔자가 좀 기구하다. 수십년전 필자가 강원도에서 군복무땐 군대 짭밥 반친으로 흔하게 나온터러 그리 대접받는 생선도 아니었다. 조선조 선조때왕께서 임진왜란 허기진 피난길에 도루묵을 진상 받고선 그 맛에 반하여 “앞으론 이 생선을 은어(銀魚)라 부르라”고 특명을 내리셨다고 한다. 그러다 난리가 끝나고 도루묵을 대령하라 일렀는데 그맛에 실망해서 “도로 ‘묵’이라 하라”고 내치셨다. 예로부터 잘나고 귀한 건 ‘은어’요 못나고 흔한건 ‘묵’인데 도루묵은 특급 승진했다가 도로 강등된 것이니 좋다 말았다. 그러나 물고기 팔자도 시간문제다. 근래엔 도루묵이 일본 원폭피해와 백혈병에 특효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다시 ‘금도루묵’ 귀하신 몸이 되었다. 일설엔 ‘말짱 도루묵’이란 오명은 사자성어 ‘도로무익(徒勞無益)’ 즉 “열심히 노력했으나 소득없이 헛일만 했다“는 말과 발음이 유사한데서 오는 착각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필자는 억을한 누명을 쓰고서도 속수무책인 밴댕이, 꼴뚜기, 도루묵을 변론하기 위해 물고기나라 신문고를 두드린다. 속좁고 몰지각한 인간들이여! 경고하건대 앞으론 절대 물고기 핑계로 누명 씌우지 말고 “제발 너나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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