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 10년 전, “선생님, 이제 아이들 한 번 가르쳐 보시죠.” 귀향하여 농장을 가꾸며 틈틈이 서원에 들러 한자사범과 훈장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훈장 선생님이 권하는 말이었다. 아직은 가르칠 실력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는 나에게 충분하다며 노인복지관에서는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며 한 번 가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왜 거기를 가?’ 하며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에서 자주 마주치는 이웃할머니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분은 정치, 경제, 시사, 교육까지 다방면으로 모르는 게 없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고 묻는 나에게, 노인복지관에 다니다 보니 이런 상식적인 것은 기본이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래요?” 하며 응대를 해주니 더욱 신이 나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뉴스를 전해 주었다. 별로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며, 전문가 수준도 아니니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되지만, 그와 헤어지고 나면 괜히 얌전한 할머니를 부끄러움도 모르고, 주책을 떠는 떠들이로 만든 주범이 노인복지관인 것 같아 복지관 탓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뒤에도 노인복지관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해 재능 나눔 자원봉사 일자리로 노인복지관을 찾았다. 복지관직원은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며 추후 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 한 번 나를 봤을 뿐인데 나를 기억하고 내 이름까지 불러주다니, 그 동안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노인복지관에 대한 나의 감정은 눈 녹듯 녹아내리고 반가움에 신뢰감까지 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지관을 나서다 뒤돌아보니 아무 의미 없이 일자리만 원해 들어갔던 복지관 건물이 처음부터 나를 기다리며 나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나는 손자손녀가 세 명이 있다. 그 중 하나밖에 없는 손자가 출국할 날이 다가왔다. 한 달 방학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손자다. 제 부모들은 학비며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등이 휠 테지만 나는 할머니로서 의무감으로 적은 용돈만 주며 잔소리만 들어놓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손자에게 내 연봉에서 두둑이 현금을 찾아 “할머니도 연봉 받는다.”고 자랑을 했다. 옆에 있던 제 어미가 ‘할머니 일 년 수고하신 보수’라며 허투루 쓰지 말고 할머니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내가 받는 연봉은, 1일 3시간, 1달, 열흘 30시간, 1년 중 9개월 동안만 일할 수 있는 노인 일자리에서 받는 보수다. 매월 십일조를 떼고, 남은 금액을 차곡차곡 모아 쌓이는 재미가 쏠쏠하다. 손자손녀에게 할머니의 사랑으로 인심을 쓸 수 있게 해 준 게 나의 귀한 연봉이다. 손자들에게 전에 주던 용돈보다 비록 액수는 적을지라도, 내 수고의 대가를 받아 전해주는 보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뿌듯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막내 손녀와 성적이 올라 좋아하는 큰 소녀에게도 축하해 줄 수 있어 더욱 행복하다.
과거 노인들은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말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러나 요즘 노인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늙으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라’는 말이 있다. 품위 있는 노년의 삶을 위해 일하는 즐거움을 즐길 수 있는 일자리와 주머니를 채울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연봉이 필요하다. 내 수고와 내 이름으로 받은 보수는 액수와 관계없이 내가 아직은 건재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나의 연봉’은 아주 의미 있는 소중한 나의 근로소득이다,
* 정남숙은 대한 문학으로 등단하여 행촌수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40여 년 살다가 귀향하여 고향에서 농장경영하며 전주의 역사, 문화, 알리는 문화해설자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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