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커피를 맛있게 얻어 마셨다. 커피를 가져다준 임 화백은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종이컵 안 커피를 내게 내밀었다. 아침 시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던 나는 일어서서 그 잔 커피를 두 손으로 받았다. 이어서 한 모금 가볍게 마시고 말했다. 절집에서 새우젓을 맛보고, 용궁 가서 토끼 간을 먹어보는 격이라고. 왜냐 하면 아침 일찍 나와서 하루 몸을 운행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자동차 예열받게 하듯 하고, 연료 점검하듯 자기 몸을 습관대로 움직여 보는 곳이 체육관이다. 그것도 남녀가 함께.
나는 평소 낯가림이 있어 수인사를 트기 전, 먼저 다가가는 친교성이 부족하다. 그럼으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는 사람은 ‘낙태한 고양이 상’이라고 한다 해도 따질 것이 못된다. 그런데 오늘 운동하면서 가벼운 눈길로 보니 임 화백께서 자기 보온병에 온수를 채워 문 밖 복도로 걸어 나간다. 곧바로 여자 손님이 뒤따른다. 이어 몇 분이 더 나간다. 슬며시 다가가 보니 그분들은 가끔 그곳에서 커피타임을 즐겨온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임 화백께 모른 체 하고 ‘혼자만 드시고 오시느냐’고 농담 같은 말을 했다.
화백께서는 말없이 돌아가서 서둘러 제조해 가져다 준 것이 내가 마신 커피였다. 내가 마신 그 커피가 내 목 안 위장으로 잠입하기까지에는 컵을 준비한 분, 봉지커피를 잘라서 적당량을 따르고 물 붓고 저었을 손길과 눈길 그리고 함께 묵언으로 동의한 마음의 이웃이 있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조금 보태서 그렇듯 유머로 ‘새우젓과 토끼 간’을 들먹여 웃고자 하였다.
커피는 세계 시장에서 원유 다음으로 가장 큰 교역량을 차지하고 있다. 쌀과 밀보다 더 큰 산업이 바로 커피산업이다. 커피의 대중화에 기여한 것은 바로 인스턴트커피라고 한다. 인스턴트커피는 1초에 1만 컵 이상이 소비된다고 추산할 정도이며, 20세기 음식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발명이라고 한다. 커피 맛에 길들여져 있는 미군들은 따뜻한 물만 있으면 진하게 농축된 커피를 언제 어디서든지 마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인스턴트커피를 환영한다고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속이 불편해 향기와 맛과 색깔이 있어 정신을 다스리는 차(茶)를 선호한 편이다. 커피며 짜고 매운 음식은 피해왔다. 차나 술이나 기호 식품이다. 그리하여 누구와 어디서 무슨 마음으로 먹고 마시는가에 의미를 두며 겸손한 지출도 염두에 둔다. 고인이 된 이병철 씨는 그가 젊디젊은 시절부터 원두커피를 즐겨 마시고 항시 정장차림이었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그는 나 같은 시골 태생보다는 50-60년 전부터 모닝커피가 주는 행복을 누렸다고 볼 수 있다.
임 화백께서 가져다준 체육관 커피를 마시고 보니 와인을 한 잔 마신 듯 행복한 취기가 가슴 위로 오르는 것 같았다. 그 기분으로 운동을 마치고 자동차로 덕진연못과 대학로 길을 달리니 비 갠 뒤, 숲 속 아스팔트길은 유난히 정갈하고 개운해 보였다. 차 안 라디오에서는 나훈아의 ‘머나 먼 고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김경희 수필가는 1985년 <월간문학> 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는 <도공과 작가> <사람과 수필이야기> 외 몇 권이 있으며, 국제펜클럽 전북위원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덕진복지관’에서 수필을 강의하고 있다. 사람과> 도공과> 월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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