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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사촌 누나

송일섭
송일섭

사촌 누나는 살림이 녹록치 못하여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떠나기 전날 살던 집을 돌아보던 누나는 눈이 붉어지도록 엉엉 울었다. 마당 앞 빨랫줄에서 참새들도 따라 울었지만 대문 밖에서는 누구 하나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유난히도 포근한 봄날 누나가 서울로 떠나는 길에는 어린 동생이 동구 밖까지 배웅하였다. 누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고향에 오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무작정 낯선 서울로 떠나는 누나의 손에는 작은 보따리 하나만 달랑 들려있었다. 서러운 길이었다.

아버지는 동경유학까지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려운 가정을 꾸리던 어머니마저도 일찍 돌아가시자 고아 가장이 된 것이다. 유일한 남동생을 친척 집에 맡겨두고 작별하는 길이니 차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누나의 표정은 달궈진 용광로의 무쇠보다 강렬했다. 아직 철부지인 어린 동생은 누나를 어떻게 위로할 줄을 몰랐다.

심포에서 하루에 고작 한두 번 왕래하는 버스에 몸들 싣고 홀로 김제역으로 갔다. 이것이 누나와 마지막이다. 누나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고립무원의 서울로 떠났다. 얼마나 막막하고 무서웠을까? 서울에 도착하여 얼마나 길을 헤매었을까? 밥은 제대로 먹었을까? 그러나 떠나는 누나를 보고 누구 하나 붙잡아 주지 않았다.

이렇게 서울로 떠난 누나는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전화도 귀한 시절이니 더욱 그랬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간호장교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다. 그 소식을 듣고는 예쁘장한 얼굴에 영리한 누나가 장교복을 입고 서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기어코 성공했구나!’하고 뛸 듯이 기뻤다.

그동안 서울 생활의 자세한 사연은 듣지 못했지만 누나의 굳은 의지로 보아 간호장교 생활도 충실히 하였을 것이다. 누나는 장교 시절 약대를 졸업한 군인과 만나 몇 년의 열애 끝에 혼인하는 데 성공을 했다. 결혼식은 친척에게 알리지 않아 아무도 참석하지 못했다.

청년 매형은 부유한 집안이었으며 결혼 후 서울에서 약국을 개업했다. 당시 약국이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날로 번창했다. 그러자 누나는 장교를 그만두고 약국에서 함께 일을 하며 아기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누나의 유일한 남동생이 물어물어 매형을 찾았는데 그때 누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하였단다. 이후 또 다시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 되었다가 다시 찾았을 때 누나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누나는 그렇게도 그리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떠날 때 다시 오지 않겠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 후 동생은 조카를 보고 싶어 찾았으나 먼발치에서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재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매형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게다.

동생도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서울로 떠났다. 산꼭대기 허름한 방에서 살며 기술을 익혀 모진 고난을 극복하고 돈을 모았다. 지금은 강남에 터를 잡고 남부럽지 않게 잘살며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제 수십 년이 흘러 조카들도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생은 조카에게 어머니의 불행했던 과거를 상기시켜주지 않으려고 한 번도 찾지 않았단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 누나의 유일한 피붙이를 그리기만 하는 심정, 이것이 드라마일까? 나에게는 사촌이지만 누나의 과거를 찾아 그가 살던 옛집을 찾으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송일섭 씨는 전주평화초등학교에서 퇴직했다. <대한문학> 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전북수필문학회와 전북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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