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숙
허겁지겁 병원을 찾았다. 의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잠시 주춤거리다 “작년에 매실을 딴 뒤 시커멓게 기미처럼 티끌이 생겨서요. 사위질빵 꽃잎이 특효가 있다 해서 붙였더니 이렇게….” 자초지종 장황설을 듣더니 “그 꽃이 뭔데 팔에 붙여 화상을 입어요.” 알 만한 사람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했느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측은하게 상처를 바라본다.
그 뒤에도 상처를 보고 묻는 사람마다 똑같은 설명을 해야 하는 일이 곤혹스러워 나중에는 ‘그냥 데었어요.’ 하고 대답해 버렸다.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꽃으로 인하여 나는 생뚱맞게 폭염에 생고생 중이다. 작년 가을 K시인으로부터 기미나 검버섯 빼는 데는 사위질빵만한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은 데서부터 소동이 연유한다.
봄이 되자 집 옆 건지산을 오 가며 사위질빵이 있는 두 곳을 알아냈다. 대지마을을 지나 오송지 쪽으로 동산처럼 쌓아 놓은 거름더미에 환삼덩쿨과 얼키설키?뒤엉켜 있고, 또 한 곳은 단풍산 진입로에 탱자나무 우듬지까지 타고 올라 바람에 그네를 타는 듯 머리를 늘어뜨리며 넌출져 있다. 어느 쪽이 먼저 피든 아무 데서나 빨리 꽃잎을 따려고 내내 눈독을 들였다.
7월 초순이 되자 하얀 성냥골 같은 꽃술을 보이더니 중순경에 이르자 이내 꽃망울을 터트렸다. 잎겨드랑이에서 나오는 취산꽃차례로 옅은 상앗빛 꽃이 무리 지어 핀다. 이때다 싶어 꽃이 피자마자 댓바람에 한 움큼 따왔다. 그리고 양념용 절구통에 넣고 쾅쾅 찧었다. 손톱에 봉숭아 꽃물들이듯 팔의 꺼뭇한 자리에 두둑하게 얹어 비닐로 야무지게 덮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묶었다.
처음부터 화끈거렸지만 적어도 한 시간은 싸두어야 한다기에 참고 버텼다. 그런데 풀어보니 꽃을 얹은 곳은 물론 물기가 번진 곳 10센티가량이 뜨거운 물에 덴 듯 발갛게 달아오른 게 아닌가. 임시방편으로 찬물에 담그고 바셀린거즈를 붙여보았지만, 통증은 밤을 지새웠다. 아침에 보니 상처 부위가 퉁퉁 붓고 수포가 생기기 시작한다.
주사, 연고 등 할 수 있는 처방은 총동원했지만 물집은 성난 파도처럼 번져나갔다. 가뭄에 땅 갈라지듯 수포의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데 의사는 감염의 우려가 있으니 터트리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촛불에 바늘을 소독하고 마술사처럼 콧김을 쐬어 넓은 부위 몇 개를 터트렸다.
수포가 터진 자리에 진물이 계속 흐른다. 그러면서 피부가 밀리어 속살이 드러나고 통증에 가려움증까지 겹치니 신경이 곤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꽃들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간밤에 내린 비로 더욱 생기를 발하며 곳곳에서 키득댔다. 그러고 보니 탱자가시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 영역을 확보한 사위질빵 녀석의 악착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꽃이란 생김보다 그 마음씨가 더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던가.
사위질빵 꽃은 모양새나 색깔이 화려하거나 요란스럽지 않고 시골 아낙처럼 소박하다. 은근히 정이 가고 측은지심마저 드는 꽃이다. 그런데 겉보기와는 달리 무서운 독기를 품고 있다니? 순하게 생긴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다가 된통 당한 느낌이다. 얕은 앎을 가지고 함부로 행동했다가 볼썽사나운 흉터에, 쭈글쭈글한 주름에, 거무튀튀한 곰팡이까지 핀 훈장을 팔에 새겼다. 괜스레 이르집어서 혹 떼려다가 혹을 붙이고 만 격이다.
여름내내 피부과를 서너 군데나 전전했다. 고생 실컷 하고 옷 몇 벌 값을 날려버렸다. 찬찬하지 못하고 덤벙대며 사는 나를 다시 한 번 본다.
* 이정숙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을 통해 등단했다. 전북펜 부회장, 수필과비평작가회 회장을 역임 했으며 온글문학상’과 작촌예술상 한글날 도지사 공로상을 수상했고 “꽃잎에 데다” 등 수필집 다수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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