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벌써부터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봄소식과 함께 설맞이 준비로 떠들썩하다. 혹자는 베트남이 더운 나라일진데 무슨 봄소식이냐고 반문을 던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베트남은 남북으로 수천 킬로미터의 긴 영토와 70%가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어 남과 북의 기후가 많이 다르다. 남부 지역이 년 평균기온이 20℃를 웃도는 더운 날씨라면, 북부지역은 우리와 다소 차이는 있으나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구분되는 4계절이 있으며, 세시풍속에도 4계절의 노래와 시가 적지 않다.
이곳 겨울은 우리처럼 산천이 얼어붙고 눈이 내리지는 않으나, 간혹 기온이 7℃까지 내려가면 학교는 서둘러 휴교를 하니 우리로서는 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년전 이맘때 일이다. 전주에 살고 있는 고향 지인 몇 분이 하노이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지인들은 베트남이 항상 더운 나라로 생각하여, 반팔차림의 간편복으로 왔다가 추위에 큰 고생을 해야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곳 시장에 가면 오리털 잠바, 털장갑과 모자 등을 쉽게 볼 수 있는 데, 이는 주택에 난방시설이 없고, 대부분 사람들이 오토바이로 출퇴근하거나 업무를 보기 때문에 겨울철에는 두툼한 방한용 의복이 필수라고 한다.
하노이의 봄은 대체로 우리보다 30일 정도 빠른데, 봄소식은 아직 개화되지 않은 꽃망울 형태의 복숭아와 살구나무 가지가 도로와 상점에 진열되는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복숭아와 살구나무의 꽃, 금귤나무는 악귀를 쫓아내고 복을 가져 온다하여 설맞이 장식용으로 구매하거나 선물로 교환하는 풍습이 있다. 물론 복숭아나무가 없는 베트남 남부지역은 희망과 복을 상징하는 노란 매화꽃을 설맞이용으로 사용한다.
베트남에서 설날을 ‘뗏’이라고 부르는데, 설을 전후로 30여일은 년 중 가장 마음 설레고 왁자지껄하는 시간이다. 설 연휴 기간은 우리보다 긴 약 1주일 정도이다. 이때는 온 가족이 모여 설날 전통 음식인 바잉쯩(네모난 모양의 찹살떡)을 즐겨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이 기간이 마냥 즐겁지 않다. 설 연휴기간에는 대부분 식당과 상가가 철시되고, 택시 잡기도 어려워 집안에서 삼시세끼를 해결하며 지내야 하는 불편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설날에 웃어른에게 세배를 하지 않으나,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웃어른과 아이들에게 주면서 건강과 행운을 빈다. 우리는 명절이나 기일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반면, 이곳은 집안에 제단이 늘 모셔져 있어 상시적으로 제사를 지낸다. 베트남에서는 새해 첫날에 집을 방문하는 첫 손님이 그 해의 행운을 가져온다하여 첫 손님을 매우 중시한다. 심지어 그 집의 주인과 궁합이 맞고 행실이 바르고 가정형편이 여유로운 지인을 설날 첫 손님으로 와 줄 것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설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9번째 설날을 맞이하는 저로서는 설날 첫 손님이 누가 될지 기대된다. 설날이 다가오면서 어렸을 때 내 고향 임실에서 즐거웠던 추억들이 저절로 떠올라 몸은 타향에 있지만, 마음은 고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아 나를 웃음짓게 한다. /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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