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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권휘원 화백
삽화=권휘원 화백

오래전, 주말 저녁이면 세계의 명화를 방영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MBC <주말의 명화> 나, KBS <토요명화> 같은 것이었는데, 이들 모두 장수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극장에 가는 일이 쉽지 않았던 시절, 1940~50년대에 제작되었던 흑백 할리우드 영화부터 온갖 세계의 명화들을 안방에서 만나는 즐거움은 컸다. 그레타 가르보, 클라크 케이블, 비비안 리, 안소니 퀸, 그레고리 펙, 잉그리드 버그만 등 세기의 배우들을 처음 만난 것도 그 명화들이었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영화가 많지만 유독 인상 깊었던 영화가 있다. 잉그리드 버그만을 처음 보았던 영화 <가스등> 이다. 영화는 아내의 유산을 빼앗기 위해 치밀한 계획으로 거짓 상황을 만들어 아내의 심리를 조종하고 통제해 결국은 아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남편의 심리전을 담았다.

미국 아카데미의 여우주연상과 미술상, 골든 글로브의 여우주연상과 드라마상을 수상한 <가스등> 은 영화로 전 세계 흥행에 성공, 그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원작은 연극이 먼저다. 미국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패트릭 해밀턴은 1938년, 자신의 희곡 <가스등 gas light> 을 연극무대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치밀한 스토리텔링이 바탕이 된 심리극 전개가 관객들의 마음을 빼앗았을 것이다.

심리서 <가스등 이펙트> 의 저자인 로빈 스턴은 20여 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활동해오면서 인간관계에 숨겨진 역학관계를 주목했다. 그가 찾아낸 것은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가해자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해자의 관점을 받아들이는 피해자가 만들어내는 병리적 심리 현상’이다.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조종당하는 고통스러운 현상을 그는 ‘가스등 이펙트’라 이름 붙였다.

<가스등> 으로부터 심리학 용어도 만들어졌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행위’를 뜻하는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스라이팅’ 풍경(?)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가스라이팅’의 영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인데 그리 낯설지 않다.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나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조종당하는 상황’에 무디어진 탓이겠다. 건강한 인간관계 회복이 절실한 시절, 로빈 스턴의 조언이 있다. ‘서로 협력하는 동등한 인간관계’와 ‘사람들을 지배하거나 조종하지 않는 윤리적인 리더십’이다. 우리의 현실에 눈뜬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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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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