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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목판의 가치

김은정 선임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삽화 = 정윤성 기자

2004년 가을, 전주 향교의 뒤편 <장판각> 에 보관되어 있던 ‘완판본’ 목판들이 대대적인 외출에 나섰다. 목판을 옮기는데 걸린 시간은 꼬박 이틀. 3백40여개 시트 박스를 가득채운 목판은 4.5톤 화물차 두 대에 실려 전북대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졌다. 목판을 정리하고 훈증소독 등 원형 복구를 위한 특별한 외출이었다.

장판각에 있던 완판본 목판은 1800년대 전라감영에서 책 출판을 위해 제작한 목판 책판들. 1899년 전라관찰사 조한국이 향교의 판고로 옮겨 보관해왔던 것들이었다. 장판각은 1987년 전주향교 뒤편에 이들 목판을 보관하기 위해 새로 지은 공간이었지만 목판의 보존에 필요한 방습 방충 시설을 갖추지 않은데다 지나치게 비좁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목판들은 원형 훼손의 위험에 처하면서 9천500여개의 목판 중 5천 50여개가 살아남았다. 200년 시간을 지켜온 목판의 가치에 눈뜨지 못하고 방치했던 결과였다.

완판본 목판은 특별한 존재다. 조선시대 전라감영 이외의 다른 지역 감영에서도 책을 출판하기 위한 목판본이 제작되었지만 완판본처럼 대량 판본이 보존되고 있는 예는 없다. 더구나 지금 남아 있는 목판으로 찍은 책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규장각, 대학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으니 전라감영 완판본 목판만의 가치는 차고 넘친다. 덧붙이자면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이 목판들을 보고 “조선시대 감영에서 만들어진 책이 전주와 대구에 있었으나 현재 대구 판본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으니 완판본은 국가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며 국가문화재 지정 추진 의지를 밝히기도 했었다.

이쯤 되면 완판본 목판의 실체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완판본 목판은 전북대박물관 임시 수장고에 여전히 갇혀 있다. 돌아갈 제집이 없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완판본 목판을 내어준 장판각에 기본적인 전시 시설을 갖추어 완판본 상설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목판본의 영구적인 보존을 위한 수장고를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논의조차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전라감영이 복원됐다. 동편의 일부 건물을 복원한 수준이지만 역사적 공간이 안긴 도시의 무게와 깊이는 확연히 달라졌다. 역사건축물은 오래전부터 도시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는 통로가 됐다. 전주 뿐 아니라 공주(충청감영) 원주(강원감영) 대구(경상감영) 등 감영을 가진 도시들이 감영 활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과제는 감영이 지닌 보편성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적 특성을 살려내는 콘텐츠 발굴이다. 들여다보면 완판본 목판은 전라감영만의 빛나는 유산이다. 더이상 방치해놓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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