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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천년고도 전주의 곰솔, 그 고고한 자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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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 수필가

 천년고도 전주에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준엄하게 꾸짖는 곰솔이 있다. 곰솔은 예부터 여느 소나무보다 억세고 강인함의 상징이다. 바닷가에서 자란 해송(海松), 껍질이 검은 흑송(黑松), 고고한 학의 자태를 닮은 학송(鶴松)이 있지만 천년고도 전주 완산칠봉 끝자락에서 250성상을 독야청청 고고한 자태를 자랑하며 버티고 서 있는 곰솔은 내륙에 깊은 뿌리를 묻고 전주를 지켜온 소나무다.

 곰솔은 그동안 열여섯 가지를 사방팔방으로 펼쳐서 마치 학이 땅을 차고 하늘로 비상하는 웅장한 자태를 연상케 한다. 또 한편으로는 12m 높이와 9.6m의 가슴둘레로 학이 땅에 내려앉을 듯이 날개를 늘어뜨리는 형상으로 다가온다. 

 곰솔은 본디 인동 장(張)씨의 선산을 지켰던 나무다. 고요한 숲속에 파묻혀 하늘보다는 땅을 좋아했다. 대지를 향해 사방으로 고르게 가지를 뻗을 줄 아는 조선 선비의 겸손함과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조선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를 겸비한 나무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솔로 꼽힐 정도이며 문화적 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내륙지역에 자라는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솔로 여겼을까

 그런데 2000년 초 전주시의 안행택지지구개발로 곰솔 앞에 8차선 도로가 뚫리는가하면 그 주변에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기 시작해 목숨 보전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다행이도 그런 가운데 1988년 곰솔이 천연기념물 355호로 지정되자 그 부근이 문화재 보호구역이되어 택지개발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어 택지개발로 도심 한가운데 서 있는 곰솔 주변은 외로운 섬처럼 변해가며 끝없이 이어지는 아픔과 상처로 곰솔은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토지개발이익을 노린 무지몽매한 누군가가 곰솔이 죽어야 천연기념물과 문화재 보호구역에서 해제될 것이며 개발 이익도 챙길 수 있다는 탐욕으로 곰솔의 몸통에 구멍을 뚫고 독극물을 투여한 사건 벌어졌으니 곰솔의 생명은 풍전등화風前燈火였으며 시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다행이 2005년 큰 수술을 받고 겨우 목숨을 보전했지만 인조나무를 붙인 몸통과 죽은 열두 가지의 볼썽사나운 몰골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의 곰솔은 생사기로를 헤매다가 16개 가지 중에서 겨우 4가지가 살아서 남쪽으로 뻗어가며 학이 다시 비상의 꿈 꾸며 날이 갈수록 신비롭게도 푸름을 내비치고 있다.

 전문가들의 정밀조사에 다라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망 진단까지 받을 정도로 몰골이 참담했었다. 찢기고 부러진 곰솔의 상처를 실제 육안으로 보아도 애처롭기 짝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자칫 곰솔은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될 뻔했지만 온 몸이 찢기면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주어서 비록 온전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그 후손들이 옆에서 조상의 아픔을 함께하고 있어 대견스럽다. 

 각종 위해(危害) 등으로 생육 환경이 나빴던 곰솔의 보호를 위해 주변의 사유지를 사들이고 시민휴식공간으로 조성하려는 계획도 세워져서 여간 다행스러울 수 없다. 인간들의 탐욕 '불천노 불이과 (不遷怒, 不貳過)정신 즉 화(禍)를 옮기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학처럼 독야청청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는 곰솔에게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위와 도리를 배워야할 일이다. 

김정길 수필가는 한국문학신문 수필부문 대상, 새전북신문 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그동안 5권의 수필집을 냈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겸 수필분과위원장과 영호남 수필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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