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자체기사

20년여 동안 쓴 일기 책으로 펴낸 90대 할머니 송봉순 씨

66세 때부터 20여년 간 72권의 일기장 기록
맞춤법 몰라 자식들에게 물어보며 쓰기 시작

image
20년 쓴 일기, 책으로 펴낸 1933년생 송봉순 할머니

“부엌 바닥에 부지깽이로 기역, 니은을 쓰며 남몰래 한글을 익혔어요. 그런 실력으로 20년 넘게 일기를 썼는데 자식들이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줘 너무 고맙네요.”

마이산과 지근거리인 진안 마령면에 사는 1933년생 송봉순 할머니. 송 할머니는 66세이던 1998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욕심처럼 쉽지는 않았다. 맞춤법을 몰라 자식들에게 물어보면 “어머니, 틀려도 됩니다”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그것이 큰 격려가 됐다. 

어린 시절 무척 가보고 싶었던 학교였다. 하지만 한 번도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결혼 후 새벽밥을 지으며 부지깽이로 부엌 흙바닥에 ‘기역, 니은, 디귿…’을 남몰래 써보며 읽기와 쓰기를 연습하다 보니 ‘떠듬떠듬’ 간판을 읽을 수 있었다. 

 

자식들이 결혼한 다음에야 비로소 마령면 주민센터 평생교육프로그램으로 개설된 한글반에 등록해 체계적인 한글공부를 시작했다. 나이 탓에 성취 속도가 생각만큼 빠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술술 읽고 시원스럽게 이해할 정도로 깨우치고 싶었어요.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배우니 온 세상천지가 내 것 같았어요. 하지만 지금도 많이 부족해요.” 

이 같은 한글 실력으로 써 내려간 일기는 문법적으로는 틀려 있는 곳이 많다. 하지만 뭇사람들에게 주는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그 가치를 무엇과 견줄 바가 아니고 오히려 100세 시대의 귀감이 된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image
송봉순 일기집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표지

“매일저녁 일기로 써보고 싶어 그렇게 해봤어요. 하루 동안 느꼈던 것들을 글로 써보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재미, 그것이 20년 훌쩍 넘게 72권의 일기를 쓸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자식들은 일기를 한데 묶어 책으로 발행해 축하했다. 제목은 일기 속 곳곳에 등장하는 문구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로 했다. 자신과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를 소망하는 송 할머니의 고운 마음씨이기도 하다. 

90세가 되던 2022년 송 할머니는 전라북도 교육감이 주는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인증서를 받았다. 

송 할머니는 한국교육방송(EBS) ‘장수의 비밀’ 프로그램에 ‘봉순할매 학교가다’라는 제목으로 출연한 적이 있고, KBS ‘6시 내고향’ 등에서 방송을 타기도 했다.

일기집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는 400쪽가량의 분량이다. 1~4부, 부록 등 5개 주제로 구성돼 있고, ‘늦깎이로 배워 눌러 쓴 송봉순 할매 일기’란 부제를 달았다. 일기집 출간은 자식들이 맡았다. 1부는 ‘봉순할매 한글 쓰기 이야기’란 주제로 일기쓰기부터 한글학교에 다니기까지의 과정을 담았고, 2부는 ‘신문에 연재된 봉순할매 일기’란 제목으로 70대, 80대, 90대 시절의 일기가 수록됐다. 3부는 ‘늦깎이 할매 학교 생활’이라는 주제로 입학과 졸업, 수상을 다뤘고, 4부는 ‘어머니, 할머니 감사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자녀와 손자들의 응원 글이 실려 있다. 그리고 부록에는 송 할머니의 늦깎이 배움의 열정을 격려 또는 축하하는 가족과 지인들의 글, 사진은 물론 가계도, 가훈 등 가족의 역사가 실렸다. 

image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출판 기념회 후 슬하 자녀들과 기념사진. 신타원은 송봉순 할머니의 원불교 법호다.

올해 93세인 배우자 조동관 씨는 “원래 성실한 데다 배움의 끈기와 열정이 대단한 아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슬하 자녀로 준열, 호열, 삼열, 세열, 창열, 정숙, 해숙, 삼숙 내외가 있고 손주는 장손 선익을 비롯해 24명, 증손은 18명이다. 자식과 손주들 모두 화목한 가정을 이뤄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장남 조준열 씨는 진안군의원을 지냈다. 현재 전북노인복지효문화연구원진안지회장이다. 진안군청 공직자로 입문해 안천면장, 진안군보건소장 등을 거쳐 마령면장으로 퇴직했다.

국승호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자치·의회국립진안고원산림치유원 전북 동부권 활성화 마중물 될까

군산“서해안 철도 군산~목포 구간, 국가철도망에 반드시 반영돼야”

익산숲이 일상이 되는 녹색정원도시 익산

문학·출판전주문인협회 ‘다시 읽는 나의 대표작’

문학·출판교육 실종 시대에 던지는 질문, 신정일 ‘언제 어디서나 배웠다’